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국시간으로 8일 오후 2시부터 9일 오후 2시까지 진행됐다. 개표가 컴퓨터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날 정오쯤 대선 승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됐다. 금융당국은 누가 당선 되든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이날 오전부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오전 8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주재로 열린 '금융시장 상황 관련 점검회의'에서는 11개 은행장들이 미국 대선 결과로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 유발될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을 논의했다. 외화유동성 상황과 건전성을 점검해 대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금융당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하 회장은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내 정치 상황 등이 맞물려 있어 외화 유동성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며 "은행들의 외화 유동성 비율은 108% 수준으로 양호하며 지속해서 외화 유동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시장 상황 점검 관련 은행장 회의'에 참석한 시중은행장들이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오전 9시에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국내외 증시 동향과 외국인 투자동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주식시장 불안 정도에 따라 비상대응계획상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진 원장은 "상황이 악화될 경우 비상자금 조달계획을 가동해 선제적으로 외화유동성을 확보하도록 지도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정오를 넘어서면서부터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앞서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졌지만, 투표 결과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금융시장의 하락세가 급격해졌다. 장 중 한 때 코스피지수는 3%, 코스닥은 6% 넘게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22원까지 급등해 1151원을 넘어섰다.
트럼프 당선이 유력해지자 금융당국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힐러리가 당선되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트럼프 당선)가능성도 열어 두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점검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주가, 금리, 환율 등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이 지속되자 한국은행은 오후 2시에 '긴급 금융·경제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각별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며 "필요 시 시장안정화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전 세계적인 추세"라면서도 "대내 여건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시장 변동성이 과도해질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은은 경우에 따라 시장 안정화 대책을 시행할 방침이다. 향후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금융·무역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인 만큼 이를 분석하고 대응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긴급 금융위·금감원 합동 금융시장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해 최근 금융시장 상황과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했다.[사진=금융위원회]
금융위와 금감원도 오후 5시에 '긴급 합동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시장 혼란을 틈탄 루머 유포, 질서를 교란하는 불건전영업 등을 철저히 단속하겠다"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적기에 증시 안정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이러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유럽은행의 부실문제, 중국 금융시장 불안 등 연초부터 지속돼 온 다른 대외리스크와 결합해 국내외 금융시장에 보다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임 위원장은 "해외 IB, 국제신용평가사, 국제기구 등과의 소통을 강화해 해외 투자자들이 우리 경제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적시에 제공해 투자 판단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사무처장을 반장으로 비상상황실도 가동된다. 24시간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필요 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시장에 대응키로 했다.
임 위원장은 "우리 경제의 충분한 대응 여력과 정부의 확고한 시장 안정 의지를 믿고 국내외 투자자들께서는 차분하게 대응해 달라"면서 "금융당국은 소중한 국민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긴장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당국이 수 차례 회의를 하며 시장을 점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급등락할 경우 환율처럼 정부의 미시개입이 불가피할 때도 있겠지만 시장 자율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시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사실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동향을 예의주의하며 시장을 점검하는 것"이라며 "우리 금융시장이 규모와 안전성을 갖추고 있고 정치적인 이슈이기 때문에 곧 안정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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