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수정이순논도섭리보세공신(守正履順論道燮理保世功臣)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영도첨의사사사(領都僉議使司事) 판중방감찰사사(判重房監察司事)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 제조승록사사(提調僧錄司事) 견판서운관사(兼判書雲觀事).
고려시대 공민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던 승려 신돈이 가졌던 관직의 이름이다. 영도첨의사사는 판사의 상위 관직이었고, 판중방감찰사사는 고위급 무신 회의 기구였던 중방의 판사였다. 이 외에 정부 요직에 두루 임명돼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 농단 흔적에 대한 보도가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고려시대 요승이자 혁명가로 평가받는 신돈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신돈과 최순실이 위임(委任) 정치를 통해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한 점은 닮았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물은 판이하다.
과거제도 역시 개혁됐다. 비슷한 학파의 합격자와 시험관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기존 좌주문생(座主門生) 관계를 뜯어고쳤다. 대신 성균관을 중수해 새로운 개혁 세력을 키워냈다. 이때 배출된 신진 학자들이 훗날 조선 건국의 초석을 닦은 정도전과 이에 반대했던 정몽주 이색 하륜 등이다.
이러한 업적에도 신돈이 요승으로 평가받는 데에는 ‘고려사’를 기록한 조선건국 세력이 고려 말기 역사를 폄하하기 위한 의도로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 왜곡하고 각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비슷한 힘을 가졌지만 최순실은 개인과 가족의 이득을, 신돈은 백성을 위하는 데 그 힘을 썼다. 백성을 눈물짓게 하는 인물과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물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해서는 안될 일이다. 신돈이 무덤 속 관을 박차고 일어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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