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유통산업발전법, 소비자 아닌 '유권자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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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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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장]

김진욱 생활경제부장 = 대한민국 유통업계가 나라 안팎으로 ‘수난’ 국면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보복조치로 롯데를 비롯한 국내 유통사가 초위기 상황에 처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법 개정이 업계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국회에 계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논란의 주인공이다.

내수 활성화와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28일 현재까지 국회에 무려 22개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유통산업 발전이 목적이라지만 현실적으로 이 법안은 백화점, 할인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규제에 쏠려 있다. 

기존 법에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중심으로 의무휴업을 해야 했지만,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 백화점과 면세점·복합쇼핑몰까지 일요일 문을 닫아야 한다. 현재 월 2회 시행되고 있는 의무휴업 횟수도 최대 월 4회, 매주 일요일로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대형 유통사들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 법안으로는 복합쇼핑몰 등 출점 시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지역상권과 상생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출점을 꾀하는 상당수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역상인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세계는 지난 2015년 부천 영상문화단지 개발사업자로 선정돼 이곳을 스타필드 하남에 버금가는 대형복합쇼핑몰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 상인들의 반발로 지난해 말 부천시장이 사업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급기야 이마트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 등이 빠지고, 당초 조성규모가 바닥면적 7만6034㎡에서 3만7374㎡로 약 50% 축소돼 신세계백화점만 들어서야 할 처지에 놓였다.

롯데 역시 지난 2013년 4월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일대 2만644㎡ 규모의 부지를 매입, 대형쇼핑몰인 롯데몰 건립에 나섰지만 지역상인들의 반발로 4년째 첫 삽도 못 뜨고 있다. 서울시가 '상생협의'를 전제로 인허가를 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지역 상인회 등이 쇼핑몰 3개동 중 1개동을 비(非)판매시설로 요구하며 롯데 측과 대치 중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는 긍정적인 법안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다만 장기불황에 내수 활성화가 시급한 현 시국에서 정치권이 지나치게 반기업적 조항을 달아 유통기업을 옥죄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냉정히 따져보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대형유통사들이 반발하는 것도 그렇게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12년 3월 이후 한 달에 두 번 의무휴업을 강제한 현행 유통산업발전법만 해도 정작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찾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실제 백화점업계의 매출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시장의 매출은 대형유통사의 규제가 이뤄진 이후에도 지난 2011년 22조1000억원에서 2014년 19조7000억원으로 3년간 2조4000억원이 더 감소했다.

설도원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상근부회장은 “영업시간 규제로 지난 5년간 대형마트 매출은 21% 줄었지만 중소상인 매출도 105조7000억원에서 101조원대로 감소했다”며 “정부가 유통산업발전법의 실효성을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신세계의 스타필드하남을 방문한 주형환 산업부 장관 역시 "기존 규제는 갈등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유통산업 발전과 소상공인 보호를 균형 있게 절충한 결과"라며 "새로운 규제 도입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안 그래도 지금 유통업계는 중국발 ‘사드 보복’으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나마 내수 활성화를 위기극복의 묘수로 삼고 현장 곳곳에서 기업들의 꿈틀거림이 포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괴리된 법 개정이 자칫 장기적인 유통업계 발전에 득보다 실을 가져다 주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더욱이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신유통산업발전법에 소비자의 목소리가 아닌, 유권자의 표심이 담길까 더욱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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