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차이나 박은주 기자 = 최근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 금지령)이 완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영화 업계는 여전히 '한한령 한풍(寒風)'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국제 영화제서 잇따라 상영이 제지되면서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한·중 합작 영화에까지 한한령의 여파가 미치고 있다.
중국 인터넷매체 제멘(界面)에 따르면 한한령의 영향으로 20개를 넘는 영화가 무산되며 한·중 합작 영화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국내 메이저 영화사 중 가장 먼저 중국 영화 시장에 진출한 CJ E&M는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分手合約)’, 영화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작 '20세여 다시 한 번(重返20歲 )’ 등으로 대박 행진을 기록하며 줄곧 중국 영화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왔다. CJ E&M는 지난해에도 15개의 한·중 합작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나 규제에 발목이 잡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영화 ‘명량’을 중국 전역에 배급한 중국 합작제작사 페가수스미디어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이들의 16개의 프로젝트 중 5개는 한·중 합작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 엑소 레이와 에프엑스 크리스탈 주연의 한·중 합작 영화 ‘비연(閉嘴!愛吧)', 한국의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완다(萬達)그룹 영화 계열사의 한·중 합작 영화 '더우포창창(鬥破蒼穹)', 빅뱅의 멤버 겸 배우 최승현(탑)이 주연을 맡은 중국-호주 합작 영화 '아웃 오브 컨트롤(幽靈飛車) 등 한류와 관련된 영화들도 모두 중국 영화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에 호의적이었던 중국의 국제 영화제에서도 한국 관련 영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25일 막을 내린 '제20회 상하이(上海) 국제 영화제'에 공식 상영된 한국 영화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참석한 한국인 배우도 없었다. 지난해 한국이 이 영화제의 분위기를 이끌었던 것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지난해 열린 제19회에서는 이준익 감독의 ‘사도’, 장재현 감독의 '검은사제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등 28편의 한국 영화를 상영했다. 또 황정민, 이정재, 이민호, 하지원, 송지효, 김지원 등 국내의 한류 스타들이 대거 참석해 큰 화제를 모았기 때문에 올해 영화제의 상황이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이번 영화제에서 한·중 합작영화 상영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 배우 김기범이 출연한 ‘김치는 크레이피쉬를 좋아해’라는 영화만이 공식 상영작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앞서 지난 3월 열린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도 한국 영화는 상영되지 않았다. 일부 한국 영화는 초청을 받았지만 중국 당국의 제지로 상영이 무산된 것이다. 그간 베이징국제영화제가 1회 때부터 한국영화들과 한·중 합작영화들을 대거 소개해왔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양국에 갈등이 생기기 전까지 한류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며 영화 산업을 견인했다. 중국의 대형 영화사들이 한국 인기배우·감독을 캐스팅하거나 한국의 많은 영화사들이 중국 영화 시장에 진출하며 양국의 영화산업은 활발히 교류했다.
그러나 한한령 이후 중국내 영화 상영, 사업 등에 차질이 생기자 영화 관련 회사들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최근 1~2년 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신생 영화사들은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처가 어려워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중국은 '부산행' 등 한국 영화 여러 편의 판권을 사들였지만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다양한 산업에서의 한한령이 조금 완화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아직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아울러 중국 내 한국 드라마 상영, 한류 연예인의 TV·광고 출연은 여전히 규제 대상이다. 중국판 '나는 가수다 시즌4'를 통해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가수 황치열은 지난해 중국 내 한한령 여파로 촬영했던 프로그램이 불방됐음을 최근 밝히기도 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방송 등 영상 콘텐츠는 한한령 완화를 가장 나중에 체감할 수 있는 분야"라면서 "한한령이 완화되더라도 올해 안에 시장이 안정화되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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