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익 기자 = 트럼프와 김기춘은 프레임 전환의 귀재다.
정부의 선거개입 문제를 돌연 불법 도청이란 프레임으로 전환시킨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작품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동차와 철강 부문에서의 '한미 무역 불균형 문제'를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불가피'란 프레임으로 전환시켰다. 특정 분야의 무역불균형은 자유무역의 필연적 결과로 FTA 개정 협상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자동차·철강 분야에서 한미간 무역불균형이 FTA의 결과물인가?'가 하나의 프레임이다.
다른 프레임은 ‘무역불균형이 FTA의 결과물이라면 협상을 개정해야 하는가?’다.
결과부터 말하면 첫 번째 프레임 안의 명제가 맞고 틀리고에 상관없이 두 번째 프레임 안의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논의의 순서를 거꾸로 두 번째 프레임부터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특정 분야의 무역불균형은 FTA의 필연적 결과다. FTA는 협상국간 관세 등 무역장벽을 철폐해 양국간 무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한국이 자동차에 비교우위가 있고 미국이 농산물과 법률서비스에 비교우위가 있다면 미국은 자동차 분야의 무역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는 농산물과 법률 시장 개방의 충격을 참아야 하는 것이다. A 산업에서의 흑자로 B 산업에서의 적자를 상쇄함으로써 서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게 자유무역의 취지다.
두 번째 프레임이 틀렸기 때문에 첫 번째 프레임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프레임이 맞고 틀리고를 따져보면 트럼프의 프레임 전환 기술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첫 번째 프레임 안의 명제는 무조건 맞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두 번째 질문이 아니라 첫 번째 질문을 던져놓고 협상 개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프레임을 짜 놓았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예스(Yes)’가 될 경우 FTA 개정 협상 에 우리가 응할 수 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몰았다.
실제 미국 무역대표부가 13일 한미 FTA 개정 관련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우리 정부가 첫 번째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게 확인됐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제의한 바와 같이 우선 양측 실무진이 한미 FTA 시행 이후의 효과를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평가해 한미 FTA가 양국간 무역 불균형의 원인인지를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개진할 것"이라고 했다.
조 대변인이 트럼프의 프레임 공격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첫 번째 프레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조 대변인은 이렇게 브리핑을 했어야 맞다. “자동차와 철강 분야에서 미국의 무역적자(확대)는 한미 FTA의 결과가 맞다. 특정 분야의 무역적자는 FTA의 필연적 결과물로 FTA 개정 협상에 한국 정부는 응할 필요가 없다. 다만 현재 한국과 미국간 자동차와 철강 분야의 FTA가 자유무역 활성화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는지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보완할 게 있으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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