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포스트]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마존 '바나나 스탠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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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기자
입력 2017-08-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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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공지능 스피커를 쓰고 계신가요?

KT에서 인공지능 스피커를 발표하자마자 제 주위 한 명의 '자칭' 얼리어답터는 얼른 '기가지니'를 구매했답니다. 그런데 그가 집에서 기가지니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날씨 알려줘" 정도. 그 이상은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며 "아직 어색해"라고 후기를 전했습니다.

유저들은 아직 음성명령 시대에 들어서지 못했지만, 국내 굵직한 IT 기업들은 인공지능 스피커들을 쏟아내며 빨리 들어 오라고 손짓합니다. 우리는 걷고 있는데 그들은 뛰고 있는 격이지요. 기가지니를 비롯해서 SK텔레콤은 '누구', 휴대 가능한 사이즈의 '누구 미니', 네이버와 카카오도 각각 '웨이브'와 '카카오미니'를 하반기 국내 출시하겠다며 야심찬 예고편을 던져놨습니다.

사실, 새로운 기기 출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생깁니다.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해주는 인공지능 기기라니. TV에서 자주 들리던 인공지능이라는 무형의 기술이 형체를 갖춰 눈 앞에 보여진다는 것이 제법 상징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장을 방문해 시연을 해보는 것 조차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이 기분은 뭘까요. 인공지능 스피커를 시연해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은 한 이동통신사 직영 매장의 직원은 "시연 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출시 했을 때는 좀 신기해 하는 것 같더니…"라고 귀띔합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도 취임 후 기자들과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스마트폰에 입을 대고 무언가를 말로 명령한다는 게 어색한 게 사실이다"라고.

이에 IT업계 관계자는 "'음성명령'이라는 서비스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아서 그렇다"며 "중국의 경우에는 걸어가면서 음성으로 모바일 메신저에 문자를 보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이 우리보다 IT문화가 2년 정도 앞서 있다고 하니, 곧 우리나라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바꾼 일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아마존의 '바나나 스탠드'입니다. 아마존은 지난 2015년부터 시애틀 본사 인근에 무료로 바나나를 나눠주는 스탠드 두 곳을 운영하고 있는대요. 지난 5월을 기준으로 무려 170만개 이상의 바나나가 소비됐다고 합니다. 아마존이 인근 직장인, 거주인 등에게 한 달 동안 공짜 바나나 170만개를 나눠주었다는 이야기죠.

점차 공짜 바나나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움직임은 크게 변했습니다. 바나나를 취급하던 식료품점들은 바나나를 판매하지 않기 시작했고, 수천개씩 버려지던 바나나 껍질을 버릴 수 있도록 주변 카페들은 매장에 휴지통을 비치해 손님을 유인했습니다. 카페들은 바나나맛 음료를 개발하기도 했고, 바나나와 어울리는 유제품을 마시는 소비문화로 유제품 매장은 호황을 맞기도 했답니다.

이 사례를 기자에게 이야기해 준 IT업계 관계자는 이후 이 말을 전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 스피커들을 다 내놓았으니,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는 게 중요해졌다. 스피커를 구매해야만 인공지능 음성 명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 이 서비스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더 먼저라는 말이다. 이 문화가 확산되면, 삶이 크게 변할 것이 분명하다."

최근 네이버는 AI스피커 '웨이브' 발표 전에 음성명령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를 모바일 앱으로 사용해볼 수 있도록 먼저 서비스 했는데요. 영리한 네이버가 음성명령 문화 확산을 위해 첫 발을 뗀 것이라고 해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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