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치킨 게임’과 목계(木鷄)
닭싸움은 역사가 깊다. 기원전 4000년경에도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고대 인더스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도 투계 흔적이 발견됐다. 당시 주민은 닭을 식용이 아니라 ‘스포츠용’으로 길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기에 종교적 색채가 덧칠해졌다.
닭싸움은 고대 중국과 페르시아에서도 성행했다. 범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이다. 특히 아테네에서는 정치적으로도 활용됐다. 청소년에게 전장에서 불굴의 투지를 함양하는 교육용 경기였던 것이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굴하지 않는 수탉, 그 수컷스러움 말이다.
현대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축제로, 민속놀이로, 더러는 도박으로 여전히 성행 중이다. 특히 태국에는 전문 투계가 100만 마리쯤 되는데, 모두 ‘닭 여권’이 있다. 2004년 조류독감이 창궐했을 때 이들 투계의 원정경기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때 10만 바트(약 340만원)를 호가하는 투계들이 집단 살처분되기도 했다.
투계장은 영어로 ‘콕피트(Cockpit)’라 불렸는데, 지금은 항공기의 조종석이나 경주용 자동차의 운전석을 뜻한다. 전투기의 공중전이나 스포츠카 경주에서 치열한 닭싸움을 연상했을까. 미국은 2008년 루이지애나주를 마지막으로 전국에서 닭싸움이 금지됐다.
대신 ‘치킨게임’은 여전하다. 미국에서 ‘치킨’은 겁쟁이를 뜻한다. 수컷 사이에 “치킨~”은 금기다. 곧바로 결투가 벌어진다. 할리우드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이클 J 폭스가 폭발하는 장면이 바로 “치킨~”으로 불릴 때다. 상대가 비록 골리앗처럼 덩치 큰 ‘싸움닭’이지만, 그렇다고 눈을 내리깔면 ‘싸나이’가 아니다.
아마도 대표적인 치킨 게임은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에서 자동차 마주달리기일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방황하는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던 게임인데, 한밤에 도로 양쪽에서 자동차를 몰고 상대를 향해 정면 돌진하는 것이다.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어 피하면 ‘치킨’이 되는 것이다.
치킨 게임에서 양쪽 다 핸들을 꺾지 않으면 모두가 승자가 된다. 그러나 충돌함으로써 둘 다 공멸한다. 이기고 죽으면 뭐하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치킨게임’은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속 극심한 군비경쟁을 빗대는 용어가 됐다. 학계에서는 박정희와 김일성의 군비 경쟁도 치킨게임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작금의 남북과 북·미의 대치 상황도 마치 치킨게임 같은 양상이다. 김정은이 핵실험과 ICBM으로 미국을 자극하면, 트럼프는 “화염과 분노”로 응수한다. 우리 군이 ‘참수 작전’을 거론하면, 북은 '서울 불바다'로 맞선다.
물론 양쪽 다 치킨게임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당장은 전조등을 번쩍이며 상대가 핸들을 꺾도록 서로 위협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김정은도, 트럼프도, 문재인도 ‘싸나이’겠지만 그렇다고 파국을 초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택지는 오히려 단순해 보인다.
투계이든 ‘치킨 게임’이든 닭싸움의 정점은 목계(木鷄)일 것이다. 장자(莊子)의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투계를 좋아하는 왕이 기성자(紀渻子)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기르도록 한다. 10일이 지나 “싸울 만한가” 묻자, “미흡합니다. 힘만 믿고 교만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또 10일이 지나 다시 묻자 “멀었습니다. 소리와 기척에 곧바로 반응합니다”라고 응답한다. 10일이 또 지났지만 “아직도 상대를 노려보며 성을 냅니다”며 고개를 젓는다.
10일이 더 지나서야 “이제 됐습니다. 다른 닭이 싸움을 걸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른바 목계지덕(木鷄之德)이다. 가만히 있어도 다른 닭이 감히 달려들지 못하며, 그의 모습만 봐도 달아나는 경지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지도자에게, 문 대통령에게 절실한 덕목이다.
치킨 게임은 닭들이 한다. 이른바 ‘닭대가리’들 말이다. 위기는 사후 대처보다 사전 관리가 중요하다. 손자병법 첫머리는 “전쟁은 국가의 큰일로, 생사존망이 달려 있어 깊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게 아니라,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전쟁을 잘하는 방법은 적의 계략을 치고, 다음은 적의 외교관계를 치며, 마지막이 적군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전쟁의 참상을 아는, 치킨게임의 결말을 아는 지도자는 함부로 전쟁을 들먹이지 않는다.
무는 개는 짖지 않는다. 겁먹은 강아지가 요란하게 짖는 법이다. 다시 ‘목계지덕’이다. 조바심 내지 않고 의연하게 현재의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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