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제안 如啼眼。 우는 눈 같네
무물결동심 無物結同心, 동심결(同心結) 맺을 물건 없지만
연화불심전 煙花不堪剪。 구름꽃을 자를 수야 없지
초여인 草如茵, 풀은 깔개 같고
송여개 松如蓋。 솔은 덮개 같고
풍위상 風爲裳, 바람은 치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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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벽거 油壁車, 유벽거 수레
석상대 夕相待。 저물도록 그대 기다리네
냉취촉 冷翠燭, 도깨비 불
노광채 勞光彩。 부질없이 빛나네
서릉하 西陵下, 서릉 아래서
풍취우 風吹雨。 바람이 비를 부는데
蘇小小墓(소소소묘), 전당기생 쑤샤오샤오의 무덤에서 / 李賀(이하)
중당(中唐)의 시인 이하(李賀, 790-816)는 스물 네살에 머리가 백발이 되었고 스물 여섯에 돌아갔다. 몰락한 왕족의 후예로 변방의 말단 관리였던 아버지의 이름에 든 진(晉) 자가 진사시험에 든 진(進) 자와 발음이 같아 불효가 된다는 얘기가 있자 시험을 포기하고, 백수의 길을 걸었다. 죽을 때 그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옥황상제가 백옥루를 지어놓고 저더러 낙성식의 글을 지어달라고 합니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눈을 감았고, 울던 어머니도 미소를 지었다 한다.
이하는 짧은 생애 동안 1200년 전의 시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모던한 감성을 보여주는 시들을 남겼는데, 최근 그를 새롭게 조명하는 붐이 일고 있다. 그를 컬트시인 혹은 판타지의 원조라고 부르며 그의 시들을 암송하는 팬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이하의 저 시를 알기 위해서는 고악부의 소소소가(蘇小小歌)를 먼저 읽을 필요가 있다. 시인은 이 시의 로맨티시즘에 탐닉하던 젊은 남자다.
첩승유벽거 妾乘油壁車, 이몸은 유벽 수레 타고요.
낭기청총마 郎騎靑총馬, 님께선 청총 말 타고요.
하처결동심 何處結同心, 어디서 사랑을 나눌까요.
서릉송백하 西陵松栢下. 서릉의 소나무 아래지요.
이름도 귀여운, 소소소(蘇小小)는 남제(南齊) 때 전당에 살았던 아름다운 기생이었다. 이신(李紳)이란 사람은 기생 소소소의 묘에 비바람이 불면 간혹 노래소리가 들려온다고 적고 있다. 시인 이하는 항주의 서호(西湖) 북쪽 고산(孤山)에 있는 소소소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 무덤 앞에서 환상을 본다. 임제는 황진이의 무덤에 찾아가 술을 따랐지만, 이하는 전우주적 스케일로 팬터지를 그려낸다. 그게 저 시다.
유란로(幽蘭露)의 유란은 안개 으슴한 곳에 피어난 난초도 되고 저녁 무렵이라 검추레해진 난엽도 되리라. 원래 유란은 거문고 곡조의 하나라고 한다. 이하는 난초의 이슬을 바라보면서, 저 음악적 '필'을 받았을 것이다. 이슬은 곧 소소소의 눈물같아 보인다. 한 여자가 여기 눈물 방울로 돌아와 있다. 이하는 소소소가 튕기는 거문고 소리와 그녀의 우는 눈을 발견하자, 죽음과 삶을 넘는 연애를 하기 시작한다. 고악부의 '하처결동심'을 떠올리며, 우린 대체 어디서 사랑을 나눌까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사랑을 나눌 게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마침 노을이 꽃처럼 곱긴 하지만 그걸 잘라서 펼 순 없지 않는가.
이 결동심 혹은 동심결을 신물(信物)을 주고받는 사랑의 맹세로 읽을 수 있지만, '고악부'에서처럼 마음을 맺는 결합이라고 그냥 푸는 게 어떨까 한다. 점잖게 말해서 마음을 맺는 결합이지, 실은 그냥 섹스다. 비록 죽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기생을 만난 젊은 사내가 다시 후일을 기약하고 반지 따위를 교환하는 일은 좀 한가해 보이지 않는가. 지금 당장 운우지정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숙박시설은 제대로 완비되어 있지 않지만 급한 대로 주위의 사물들을 끌어와 일을 벌이자는 기분으로 읽는 게 더 실감이 난다.
우선 무덤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가져오자. 풀들은 푹신한 요가 아닌가. 솔잎은 지붕처럼 가리개로 쓰거나 혹은 이불처럼 덮어도 되겠군. 풀잎 위 솔잎 아래 이제 하얀 남녀가 요동을 치고 있으리라. 이하-소소소 포르노 버전이다. 그래, 외로웠지? 우는 소소소의 뺨을 매만지는 이하의 손길. 바람이 치마다. 펄럭거리는 소리가 야하디 야하다. 나뭇잎 끝 물방울이 패옥이라. 허리춤에 차고 있던 구슬들도 흘러내린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으나, 젊은 이하의 가슴이 벌떡벌떡 뛴다.
이하와 소소소가 이러고 있을 동안, 그녀를 태우고 천상으로 돌아갈 유벽거는 저녁 늦게까지 대기하고 있다. 유벽거는 푸른 기름으로 안벽을 곱게 칠한 화려한 여인용 수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아까 난초가 으슴해지던 노을빛은 이제, 저녁의 어둠을 데려오고 있다. 그래도 이하의 자유연상은 멈추지 않는다. 더욱 어두워져 주위에는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는데, 그 또한 귀신과 인간의 상열지사를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서릉 아래 바람이 비를 분다(풍취우 風吹雨)는 마지막 표현은, 아까 그 고악부를 주목하라. 사랑을 나누는 곳은 바로 서릉의 소나무 아래다. 그 '천연 호텔' 아니 '묘(墓)텔'에서 바람이 비를 분다. 바람은 귀신이다. 운우의 상징에 따르자면 비는 몸사랑이다. 바람이 비를 분다. 당연히 빗줄기가 흔들린다. 다시 보자. 귀신이 남자를 흔들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투표권 나온지도 얼마 안된 나이. 이하는 이 심오한 비밀을 어떻게?/빈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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