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㉘] 입을 일 거의 없는 원피스를 다림질하는 ‘그녀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고윤실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상하이대학 문학박사)
입력 2018-01-11 11: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뤼투의 '중국 노동자' 3부작

  • 마지막 편 '여공이야기' 통해 노동자·아내·어머니로서 삶 전달

뤼투의 신간 '중국의 신노동자: 여공이야기'의 표지 이미지. [사진=바이두]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뤼투(呂途)의 ‘신노동자(新工人)’ 3부작의 마지막 편이라 할 수 있는 ‘여공이야기(女工傳記)’가 출간됐다.

앞서 두 편에서는 신노동자의 도시에서의 생존환경과 노동자 주체로서 자각적 각성이 담긴 ‘방황과 굴기(迷失與崛起)’ 그리고 뤼투가 직접 산업도시와 노동자 기숙사를 찾아다니며 채록해 정리한 그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인 ‘문화와 운명(文化與命運)’이 수록돼 있다.

그리고 이제 막 출간된 마지막 편은 도시의 여성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다.

신노동자란 중국 경제가 굴기하고 난 이후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군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성장 초기 도시의 ‘농민공(農民工)’과는 다른 새로운 노동자 집단이다.

농민공은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로 농촌의 수많은 인구가 대도시를 비롯한 산업도시로 유입됐고, 중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세계의 공장’에 투입되는 저임금 노동력의 저수지를 이뤘다.

도시로 유입된 농민공에게 도시개발과 산업화 바람은 농사 외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헐값의 대량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던 공장주나 고용주들에게 이들은 의료와 사회보험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인력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도 초고속 경제성장의 시대가 지났고, 중저속 성장추세에 접어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농촌의 토지가 자본화되면서 부동산시장과 투기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삶의 기반을 토지에 근거했던 수많은 농민들이 토지에서 유리됐다. 도시에 흘러들어 도시 기층을 이루었던 농민공들은 다시 농촌으로 돌아갈 수도, 고물가와 높은 집값으로 도시에 눌러앉을 수도 없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농민공 2세들은 원래 ‘농부’였던 부모세대들에 비해 ‘영민’했으며 스스로 노동자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무자비한 착취와 열악한 생존환경의 부당함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동료들의 자살을 목도하면서 노동법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의 권익보호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노동자’라고 하는 새로운 집단이 출현한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권인보호와 자각적 노동자 의식을 갖춘 이들의 공동체 형성은 이제 막 시작단계를 지났을 뿐이다. 게다가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노동자들 가운데 더욱 약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노동자로, 아내로, 어머니로, 또 하나의 인격적 자아를 갖춘 인간으로 이제 막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뤼투는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기록했다.

1990년대 생 여성노동자에서부터 1950년대 생 여성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시간의 흐름이자 여성 생애의 단계에 따른 그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적어냈다. 이들의 연애관, 결혼관, 가정관, 자아실현, 그리고 미래와 꿈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환락송(歡樂頌)’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리에 시즌 2의 방영을 마쳤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섯 여성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소비생활과 연애와 일터를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들이 쫓는 도시의 꿈은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과 높은 빌딩의 스카이라인에 도취돼 있다. 그리고 이런 환상적 이미지로 포장된 도시생활의 저 너머 현실과 노동의 현장 속에 뤼투의 ‘그녀들’이 있다.

그녀들에게 있어, 도시는 거대하고 냉정하며 삶은 피로와 책임의 무게로 지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삶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삶과 노래를 그들이 지은 시의 내용 안에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나의 시편(我的詩篇)’에서도 한 여성 노동자는 자신이 입을 일이 거의 없는 원피스를 다림질 하면서 원피스를 입고 나들이 가는 꿈을 꾼다.

희망이야말로 한 평도 되지 않는 자신의 일터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노래하는 삶의 희망이란 무엇일까? 도시는 이들에게 무슨 꿈을 꾸게 하는가? 성공의 빛나는 아우라 속에는 어떤 눈물과 한숨이 숨어있는가?

중국의 미디어와 도시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미지는 당대 사회의 다양한 면모 가운데 편식적으로 한 곳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중국 사회와 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더 넓은 시각적 스펙트럼을 갖추고 면밀한 관찰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고윤실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상하이대학 문학박사) ]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아주NM&C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