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은행의 가장 큰 경쟁자는 다른 금융사가 아니라 알리바바, 아마존, 애플 등 IT 기업들이다. 이들은 IT 혁신으로 새로운 유형의 금융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만들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 소장 겸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금융사가 IT 혁신을 장착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IT회사가 금융을 장착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이미 일부 영역에서는 비금융사가 금융사를 압도하고 있고, 이같은 속도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금융은 IT이노베이션을 통해 이미 글로벌화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금융을 규제산업으로 규정하고 '혁신'을 방해하고 있다. IT기술이 속도를 낼수록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우리 블록체인 산업은 혁신이 늦어지고, 산업 자체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 소장은 "중국의 IT 대기업인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 알리페이 선불계좌에는 수억명의 고객이 가입돼 있을 정도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며 "금융규제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 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하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을 규제로 막으면 국내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기업들에게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심판자인 소비자가 새로운 기술이 편리하면 이를 취하고 아니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생리인데 정부의 강압적인 규제만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
문 소장은 "규제는 피해의 사전방지를 '제1의 목표'로 두면 안된다"며 "생태계가 조성된 뒤에 이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전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은 블록체인, 빅데이터, AI 분야에서 룰 세터(rule-setter·규칙을 정하는 사람)가 될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더 뒤처지면 또다시 다른 이들이 정한 규칙을 따라가는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 소장은 "통찰력 부족과 각종 규제 탓에 한국의 금융과 블록체인 기술은 정체되고 있다"며 "룰 세터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더이상 뒤처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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