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은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에소에서 열린 게임과학포럼 기자간담회에서 "게임 질병코드화 과정에 정치·사회·문화적 이득을 위해 의료화의 추세를 극단화시키는 과잉의료화(Overmedicalization)가 나타나고 있다"며 "게임의 잠재적 유용성마저 차단하는 우리사회 부정적인 담론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과학포럼은 게임의 효능 및 기능을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게임이 뇌와 인지 건강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연구하는 프로젝트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심리학과, 인지과학 연구소 등 각 분야의 연구진 17명이 게임의 순기능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WHO 내달 20일~28일 열리는 스위스에 총회에서 '게임 장애 정식 질병 안건'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안건이 통과하면 오는 2022년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국내 통계청은 수년 내로 한국질병분류코드(KCD)에 반영할 것을 논의하고 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도 '게임의 질병화' 주제 강연을 통해 게임중독을 의료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들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의 경우 정식의학 분야의 논문의 비율이 높다. 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기준으로 한국은 91편 가운데 약 60%가, 중국은 85편 중 약 50%가 정신의학 분야에서 나왔다. 반면 게임 이용에 진보적인 관점을 가진 호주, 영국 등은 약 30%를 밑돌았다.
의료화 현상은 수십년간 의료 민영화, 보험료 인상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낳고 있다. 의료사회학자 피터콘래드는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라는 책을 통해 비의학적 문제가 의료서비스라는 상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비판했다. 국내에서는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가 대표적인 의료화 부작용의 예다. ADHD 진단기준이 생겨나면서 우리나라 진료 건수는 2002년 이후 10년 만에 4.5배로 증가하기도 했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 선임강의교수는 ‘게임은 뇌를 스폰지로 만드는가’ 주제 강연에서 게임의 선용 사례를 들어 부정적 담론을 반박했다. 정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강동화 신경과 교수의 연구를 예로 들어 “실시간 전략게임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시지각능력과 판단 및 추론을 담당하는 뇌영역의 활성화가 관찰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WHO의 결정이 게임 산업의 우수인력 유실과 경제적 손실을 야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태진 교수는 "사회적인 담론의 영향은 강력하고, 간접적이다. 산업발전에 위험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WHO의 질병코드 효력이 발생하는 오는 2023년부터 향후 3년간 국내 게임산업은 6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경민 교수는 "전문적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 의존하도록 사회를 재구성하는 현상, 즉 문제해결의 상품화가 임상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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