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법안 쏟아진다... 재계 “反기업법” 반발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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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 기자
입력 2019-05-0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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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법, 산업안전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정부 '글로벌 스탠더드'

정부가 상법개정안 등 이른바 반(反)기업 입법을 속속 밀어부치면서 재계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정부는 땅콩 회항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이 기업지배구조 문제와 관련이 깊다고 보고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내세우고 있다. 상법개정안을 발의한 법무무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검찰 개혁 등 경제·사회 양면에 칼을 빼든 셈이다.

재계는 강력히 반발한다. 정부의 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다드란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나 반도체 등 주력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에 빌미만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8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무부가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지난 22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시행령·시행규칙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최근 수년간 논란과 갈등의 배경이 됐던 사건들에서 얻어진 사회적 교훈과 합의들을 반영한 법률이라며 개정에 적극적인 자세다.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만큼 개정의 정당성이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집중투표·다중대표소송 도입, 경영 투명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3월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과 함게 ‘공정경제 실현’을 주요업무에 포함시켰다. 이날 박 장관은 “상법개정안과 집단소송제를 올 상반기까지 입법하겠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장관은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상법개정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자자들에게서 평가절하를 받고 있는 이유,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지목해 왔다.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 △감사위원 분리선출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다. 모두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켜 대주주를 견제하겠다는 제도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출 방식의 하나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특정 후보에게 중복해서 투표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제도가 도입도면 소액주주들의 이사회 참여 기회가 대폭 확대될 수 있다.
감사위원는 감사를 선출할 때에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인데, 역시 대주주를 견제하고 소액주주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전자투표제는 주주총회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법무부는 이 전자투표제를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 의무화하도록 상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전자투표로 소액주주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대주주를 견제하는 효과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 대한 ‘책임 추궁’ 길 넓어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제도도 대폭 강화된다. 대표적인 것이 ‘다중 대표소송’ 혹은 ‘집단소송제’다. 다중 대표소송은 자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해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집단소송제는 기업의 상품이나 행위로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대표로 소송을 내면 소송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사안에서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적은 액수의 합의금에 동의하는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일명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같은 맥락이다. 위험한 작업이나 공정을 하청업체에 미룰 수 없도록 하고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도 원청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은 지난 해 연말 국회를 통과해 올 하반기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벌써부터 개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지만 막상 김씨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은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노동계와 시민단체 일부에서는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다’고 비판해 왔다. 개정안대로라면 산안법 적용대상 업종과 범위는 대폭 확대된다.

화학물질관리법도 비슷한 상황이다. 5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하반기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지난 4월초 정부개정안이 확정돼 국회로 넘어갔다. 유해화학물질의 신고와 추적, 관리를 철저히 해 산업재해나 주민피해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기업의 부담은 대폭 늘어나게 된다.

▲들끓는 재계...의지 다지는 정부

상법개정안을 비롯해 산업안전보건법 등 제·개정이 진행 중인 법령들에 대해 기업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에 엄청난 부담을 지울 뿐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 당장 상법 개정안 해도 소액주주들의 참여보다 헤지펀드 등 외국투기자본들의 먹잇감으로 국내기업들을 내모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집중투표제 등의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투기자본에 경영권을 내주게 되는 것”이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산업안전법이나 화학물질관리법은 노동계 주장에 편향된 내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한 재계는 여러 경로로 정부에 우려를 전달하는 등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상법개정이 필요하다면 차등의결권 등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법도 함께 추진되야 한다”면서 일방적 법개정 작업에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높아진 인권·노동의식 수준을 이유로 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이상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대주주의 전횡을 두고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모든 기업에 일일이 직접 개입할 수도 없는 만큼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법령의 수준을 국제기준에 맞추겠다는 생각이다. 

재계는 직접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은 일단 피하고 싶어하는 눈치이지만 반대입장이 분명하다는 점은  여러 경로로 정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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