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수는 망해가던 AMD를 위기에서 구했을 뿐만 아니라 인텔과 체급 차이가 명백한 회사를 다시금 인텔의 '라이벌'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리사 수가 CEO로 취임한 후 주당 2달러(최저 1.78달러)를 헤매던 AMD의 주가는 주당 최대 32.72달러로 치솟았다. 나스닥의 대표적인 '잡주(저조한 실적, 사고 등 이유로 나쁘게 평가받는 주식)'를 우량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미 경제지 포천은 리사 수를 2017년 '세계 최고의 리더', 2018년 '올해의 사업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연이은 전략 실패... AMD가 흔들린 이유
리사 수는 2011년 글로벌 비즈니스 매니저(부사장)를 역임하면서 AMD와 인연을 맺었다.
두 전략은 모두 실패했다. 불도저는 설계 상의 실수로 성능은 인텔의 CPU보다 많이 떨어지면서 발열은 심한 최악의 제품이었다. 개별 CPU 코어의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CPU에 탑재되는 코어 수를 늘렸지만, 시중에는 이렇게 많은 코어를 활용하는 앱이 없어서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생산 공정도 인텔과 비교해 2세대나 뒤떨어졌다. 심지어 생산단가조차 높아 AMD의 수익성이 악화되는데 일조했다.
CPU와 GPU를 하나로 묶는다는 APU는 분명 혁신적인 제품이었지만,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APU를 제대로 지원하는 앱이 없었다. 때문에 APU는 앱 실행능력은 인텔 CPU보다 떨어지고, 그래픽 처리 능력은 엔비디아 GPU보다 떨어지는 애매한 제품이 되었다. 결국 저가 PC나 노트북에 공급되는 처지에 몰렸다.
시장은 AMD의 전략 실패에 즉각 반응했다. 2007년만 해도 77.1%(인텔) 대 22.7%(AMD) 점유율로 PC용 CPU 시장을 인텔과 양분하던 AMD는 2011년 이후 한자릿수대 점유율(8.7%)로 추락했다. 1주당 20달러로 한때 인텔과 대등했던 주가도 1/10 수준으로 대폭락했다.
가장 크게 몰락한 분야는 서버 및 클라우드용(슈퍼컴퓨터 포함) B2B CPU 시장이었다. 한때 3:1 비율로 인텔 제온 CPU와 시장을 양분했던 AMD '옵테론' CPU는 불도저의 실패로 명맥이 끊겨버렸다. 어부지리를 얻은 인텔은 서버 및 클라우드 CPU 시장에서 99.9%라는 경이적인 점유율을 확보했다.
시장조사기관 무디스가 2015년 AMD를 '투자부적격'으로 지정하는 등 많은 시장평가기관이 AMD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전 인텔 CEO는 AMD를 두고 "이제 곧 망할 회사이니,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새 경쟁자인 퀄컴에 집중하라"는 내부 지침까지 세웠다는 후문이다.
회사 상황이 이렇자 핵심 인력 이탈도 가속화됐다. CPU, GPU를 설계하던 엔지니어들이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 타사로 줄줄이 이직했다. 세계 최초로 1GHz(기가헤르츠) 속도의 CPU를 생산하며 인텔의 경쟁자로서 입지를 굳혔던 AMD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장 다각화로 자금을 긴급 수혈
위기의 기업을 구하기 위해 2012년 리사 수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시장 다각화'와 '선택과 집중'이다.
당시 AMD는 주력 시장인 PC 시장에서 경쟁사인 인텔과 엔비디아에게 밀려 도저히 반등의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사 수는 '비디오 게임기'와 같은 신규 시장 개척에 나섰다. PC용 CPU와 GPU라고 해서 꼭 PC 시장에만 공급하라는 법은 없다. 리사 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의 문을 두드렸다. 두 회사가 개발 중인 차세대 비디오 게임기에 AMD의 제품을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단순히 CPU와 GPU를 공급하는 것으론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APU를 두 회사에 들이밀었다. APU는 애매한 성능 탓에 망했지만, 비디오 게임기용으론 그 정도 성능이면 충분했다. CPU와 GPU가 통합되어 있으니 제품 크기가 작아야 하는 비디오 게임기에는 최적의 솔루션(해법)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는 자사 비디오 게임기인 '엑스박스 원'과 '플레이 스테이션4'에 AMD APU를 채택했다. 두 제품은 1억대가 넘게 팔리며 승승장구했고, AMD의 실적도 함께 개선됐다. 2013년 10월, AMD는 5분기만에 적자의 늪에서 탈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리사 수의 시장 다각화 전략으로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PC 시장에 기대던 AMD는 매출의 40% 이상을 비 PC 시장에서 확보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공로를 인정받아 리사 수는 2014년 10월 AMD CEO로 임명됐다.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반도체 업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CEO가 되었다.
◆선택과 집중으로 시장 점유율 회복
AMD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리사 수는 시장 다각화에 이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진했다. '잘하는 것(CPU)만 하자'는 얘기다. 불필요한 사업은 모두 정리했다 전임 CEO인 로리 리드가 3억 3000만 달러에 인수한 마이크로서버 업체인 '시마이크로'도 매각했다. 시장에 매물로 내놓지 않고 특허만 남겨두고 생산 공장만 치웠다. 고객사와 사업영역이 겹치고 수익성이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에게서 들어오는 돈은 모두 신 CPU 개발을 위한 R&D에 투자했다. 단순히 돈만 투자하지 않고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R&D 라인업도 최대한 간소화했다. PC, 서버, 슈퍼컴퓨터 등 모든 컴퓨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CPU 개발에만 돈을 투자하고 다른 계획은 모두 정리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려는 전략이다.
신 CPU 개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CPU 양산을 앞두고 CPU 아키텍처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양산을 중지하고 제품 발매를 늦춰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제품 발매일이라는 소비자와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리사 수는 AMD 최고 엔지니어 4명을 불러 모아 '아폴로 13 모드(치명적인 결함으로 로켓 발사는 실패했으나, 최상의 대처로 우주인들은 전원 무사히 귀환한 달 탐사 프로젝트)'라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실패라는 선택지는 없다(failure was not an option. 아폴로 13 사고 당시 나온 발언)"는 발언을 하며 엔지니어들을 독려했다. 본인도 AMD 오스틴 연구실에 매일 상주했다. 최상의 대처로 리사 수와 엔지니어들은 제품 양산에 앞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마침내 신 CPU '라이젠'이 2017년 2월 시장에 공개됐다. 라이젠은 지난 6년간 부진을 씻어낸다는 리사 수의 야심이 담긴 제품이었다. 일부 게임 실행 능력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인텔의 동급 모델을 능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시장과 이용자들은 이 놀라운 CPU에 열광했다. 시장조사기관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AMD는 2018년 1분기 CPU 시장점유율 20%를 확보하며 2000년대 초 인텔과 당당히 경쟁하던 시절 점유율을 회복했다.
투자자들도 AMD를 다시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주가는 2달러에서 12달러로 6배 이상 상승했고, 미국 500대 기업 시가총액을 산정하는 S&P 500 지수에도 AMD의 이름이 다시 올라갔다.
◆B2C에 이어 B2B에서도 입지 회복 나서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리사 수는 일반 이용자 시장(B2C)에 이어 B2B에서도 옛 영광을 회복하길 원했다. 2017년에 들어 인텔은 클라우드 시장 급성장으로 서버용 CPU 판매량을 확대하며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경신하고 있었다. 클라우드 시장에서 인텔의 독주를 제지하기 위해 리사 수는 예전처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특정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아마존이었다.
2018년 11월, 아마존은 클라우드 시장에서 AMD와 협력한다는 발표를 했다. AMD의 서버용 CPU '에픽'을 아마존웹서비스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99%를 자랑하던 인텔의 입지를 뒤흔든 것이다.
얼마 전 열린 컴퓨텍스 2019에서 리사 수는 소니가 AMD APU를 활용해 차세대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 스테이션5(가칭)'를 개발하고 있다는 발표를 했다. 이례적으로 부품 공급사가 고객사 제품에 대한 언급을 먼저 한 것이다. 업계에서 리사 수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도 차세대 비디오 게임기에 AMD APU를 그대로 이용할 계획이다.
리사 수는 포천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을 밝혔다. 그는 "많은 이들이 AMD가 왜 돈이 되는 모바일 CPU나 통신칩셋을 개발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3년 전에 했어야 했다. 지금은 3년 후에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고 추진해야 한다. 시장이 변하면 필요로 하는 기술도 함께 변한다. 사업 다각화를 포함한 모든 의사 결정은 미래를 위한 투자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아이돌... 리사 수는 누구?
많은 언론이, 심지어 AMD 내부에서조차 리사 수를 CEO로 부르지 않고 박사(Ph.D)라고 칭한다. 반도체 산업 발전에 기여한 것에 대한 존경을 담은 표현이다.
리사 수는 1969년 대만에서 태어나 2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길에 올랐다. 1986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입학해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학부생 과정에서 그는 웨이퍼 기판(반도체의 핵심 소자) 제작 과정을 접했고, 좀 더 심도있는 반도체 제작 과정을 배우기 위해 모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박사 논문인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Silicon on Insulator, 웨이퍼 기판 표면과 하층 사이에 얇은 절연막층을 추가해 반도체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법)’ 구현은 훗날 IBM과 AMD에게 받아들여져 AMD의 애슬론 CPU가 인텔 펜티엄 CPU를 성능면에서 능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5년 IBM의 반도체 연구 개발 부서에 합류했다. 당시 알루미늄 배선을 구리 배선으로 교체하는 방식을 고안해 반도체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20% 향상시키는데 기여했다. 2007년까지 12년 동안 IBM 연구 개발 부서에 재직하면서 40개 이상의 반도체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 등 소자 물리학 분야에서 입지를 쌓았다.
이후 엔지니어를 떠나 경영자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07년 프리스케일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이직해 임베디드와 통신을 위한 반도체 개발을 지휘했다. 리사 수의 도움으로 2011년 프리스케일은 성공적으로 기업 공개(IPO)를 진행했다.
여담으로, 리사 수는 CPU 업계의 아이돌로 통한다. 얼마 전 AMD는 리사 수의 친필 사인을 담은 50주년 한정판 CPU와 GPU를 시장에 내놓았다. 해당 제품은 빠르게 매진됐고, 미국 이베이 등지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CEO 관련 상품(굿즈)이 아이돌 상품처럼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건 IT 업계에서 리사 수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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