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증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내년 전망은 나쁘지 않다. 우선 내년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중 간 무역분쟁이 완화될 조짐이다. 각국 정부는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의 실적도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
11일 증시 전문가들은 2020년 국내 증시가 상반기까지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주춤할 가능성이 높아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사다난 2019년 증시··· 하반기 회복세
올 한해 증시는 편할 날이 없었다. 미·중 무역갈등과 홍콩 시위,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 등 대외 악재가 심화되며 증시는 급락했다. 2010선에서 출발했던 코스피는 지난 8월 2000선 밑으로 내려가며 1910선대까지 추락했다. 글로벌 증시는 그런대로 선방했지만, 코스피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국내 기업들의 기초체력도 약해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 전망치를 낸 주요 상장사 연간 순이익은 94조5555억원으로 집계됐다. 상장사 순이익이 100조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6년 이후 3년 만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대외 의존도가 큰 우리 기업과 증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시작되며 2016년 이후 3년 만에 코스피가 장 중 1800대로 주저앉기도 했다.
그래도 하반기 들어 숨통이 트였고, 코스피는 2100선을 회복했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 지난 8일까지 4.7% 올랐다. 내년 증시는 올해보다 나을 전망이다. 대내적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 이하이고 대외적 상황에도 큰 변화는 없겠지만, 내년에 대한 기대감이 하반기 증시 반등을 이끌었다.
서동필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이 스몰딜에 그치고, 브렉시트도 새로운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시각이 내년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적어도 올해보다는 나아질 거란 기대감이 반영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내년 상반기 회복세··· 대내외 환경 맑음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증시가 좋은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증권사들이 제시한 내년 코스피 예상 범위는 낮게는 1900선이지만, 최대 2500선까지 나왔다. 무엇보다 내년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큰 이유는 기업의 실적 개선과 대외 환경의 변화다.
내년 기업들의 이익은 올해보다 소폭 개선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 전망치를 낸 주요 상장사 279곳의 내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65조7919억원이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131조616억원)보다 26% 증가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업종이 반등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들어 기업들의 이익이 크게 하락했으나 내년에는 순이익이 120조원까지 회복될 것"이라며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기업 이익이 회복되면서 증시가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외 환경도 올해보다 우호적이다. 특히 미·중 무역협상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1단계 협상 체결이 예상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마찰로 자산가격 하락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적어도 내년 3분기까지는 무역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도 증시에 긍정적이다.
정용택 센터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당분간 동결한다고 밝혔지만, 내년 기준금리가 한 차례 더 인하될 가능성이 크다"며 "금리 인하가 없더라도 내년에는 연준이 보다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최석원 센터장 역시 "미·중 무역협상 진전과 함께 각국 정부들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 시행으로 대외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본다"며 "내년 코스피는 2000~2400선에서 움직이며 상반기까지는 좋은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하반기는 미지수··· 상고하저 흐름
그러나 내년 하반기까지 온기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재정정책의 힘으로 증시가 상반기 강세를 보이겠지만, 지속적인 활황을 기대하긴 어렵다. 최 센터장은 "브렉시트 등 불안정 요인이 있는 영국만 제외하면 미국과 유럽, 신흥국 증시 모두 올 한 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내년 상반기를 지나면 글로벌 증시의 가치평가(밸류에이션) 부담이 생겨 상승세가 둔화될 수 있다. 그는 "올해 2%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성장률이 내년에도 2% 초반 수준에 머물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경제성장률도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 증시 상승이 지속되긴 힘들다"고 밝혔다.
기업 실적이 대폭 상승하기도 어렵다. 박희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에는 올해보다 유동성 환경이 좋아지고 기업 실적도 회복될 것"이라며 "다만, 실적 상승 폭이 크진 않고 대외 환경이 개선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증시 상승 폭도 제한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내년에는 코스피가 2200~2300선까지 상승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하반기까지 긍정적 흐름이 이어지긴 힘들다"며 "기업들의 실적이 소폭 개선되는 수준이어서 내년 증시는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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