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문재인 정권은 지난 15일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험난한 국정 운영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역설의 형국에 놓여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향한 문재인 정권의 일보일보마다 국민의 엄한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아무리 압승해 탄탄한 지지의 반석 위에 올랐다고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영향으로 기업 경영과 고용이 급격히 악화되면 이 정권이 가장 중시하는 노동자에 곧장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여당이 대응을 자칫 잘못하면 강한 역풍을 맞게 된다.
정부가 지난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위기에 빠진 기간산업 지원책을 내놓으며 ‘고용유지선언’을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특히 이 회의에 앞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재계 총수들을 만나 고용유지를 당부한 것은 반(反)기업의 벽을 넘는 과감한 한 수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이른바 ‘한국판 뉴딜’ 카드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내일(29일) 열리는 첫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경제중대본)에서는 한국판 뉴딜의 추진방향과 범부처 기획단 구성이 논의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9일 1차회의 때부터 주재해 온 비상경제회의가 5회로 끝나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본부장을 맡는 경제중대본 체제로 전환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는 3차 추가경정예산까지 포함해 총 240조원을 풀게 된다. 이제는 정책 집행 스피드와 책임을 경제중대본이 짊어지게 됐다.
코로나 쇼크는 2008년 국제금융시장을 뒤흔든 리먼 쇼크와 대비되지만 경제의 순환과 실패에 기인한 경기후퇴와는 전혀 다른 미지의 역병대유행(팬데믹) 사태다. 이는 지금까지 세계가 노하우를 축적한 경제·금융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실물경제에 주는 영향이 훨씬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때문에 각국은 국내 총생산(GDP)의 10~20%에 이르는 유례없는 대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막대한 재정동원에서 정책방향을 잘못 잡으면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큰 정부에 의한 미래 침식의 우려다. 그래서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국민과 언론은 심각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거시경제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코로나경제학’의 제1장은 의료(방역)대책과 경기대책의 트레이드 오프(상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면 제2장은 효과적·효율적 재정 활용과 그 감시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시경제 학자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가 두 가지 의미에서 세계경제의 핵심을 강타했다고 분석한다. 첫번째는 글로벌화다. 세계경제는 나라와 대륙을 넘어 확장된 네트워크와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을 사용해 사람과 상품이 상시 이동함으로써 경제활동이 유지되고 성장해 왔는데 이것이 차단된 것이다. 글로벌화의 근간이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를 ‘그레이트 셧다운(대차단)’이라고 명명했다. 두 번째는 선진국의 산업구조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은 모두 산업고도화가 이뤄져 개인소비가 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더욱이 그 내용도 상품보다는 소비행위 자체로 바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사태로 외식과 사교, 이벤트와 엔터테인먼트, 여행 등이 제한되거나 금지된 것은 고도화한 개인소비와 서비스산업을 무기력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들이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딜레마다.
경제학자들의 여러 분석에서 정책입안자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힌트는 ‘어느 정부도 해도(海圖) 없는 항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험도 없고 정답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의 바다를 각자도생의 자세로 항해해야 하는 시대다.
이런 점에서 경제중대본은 ‘V자 회복을 겨냥한 단기집중형 대책’과 ‘장기전에 대비한 긴 호흡의 대책’을 아울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후의 경제·사회를 내다보면서 10년 뒤의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박정일 한양대 컴퓨터S/W학과교수는 “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경제위기를 지역·업종·시간이라는 3개축으로 나누어 분석,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마다, 기업·산업의 업종마다, 시간별로 코로나 영향이 다른 만큼 현장 중심으로 세부적 분석과 대책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정책을 유연하고 대담하게 바꿀 수 있는 시야를 열어야 한다는 얘기다.
내일 경제중대본 첫 회의의 핵심은 ‘한국판 뉴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지난 2월부터 극히 일부가 허용된 원격의료와 이미 온라인 개학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기 시작한 에듀테크(온라인교육서비스) 등 비대면 서비스 산업이 주요 테마로 들어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 사태이후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을 총동원해 사회실험에 나서고 있는 중국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선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AI(인공지능), 빅 데이터, 5G 등을 구사한 감염자 추적, 소독, 배달, 체온검사, 원격통신에서 다양한 방책들이 시도되고 있다. 알리바바는 건강상태와 여행경력에 따른 개인마다의 바이러스 노출 정도를 즉석에서 표시하는 QR코드를 도입했다. 위챗은 열차와 비행기에서 감염자와 접촉이 있었는지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감염리스크 탐지 앱을 내놨다. 지하철 승차에 맞춘 실명등록제와 예약 승차제를 실시하고 있는 도시도 있다. 5㎝ 이내에 있으면 매초 15명까지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됐다. 알리바바 계열 연구소인 달마원은 신형 폐렴이 의심되는 환자의 CT영상을 20초 이내에 판독할 수 있는 AI영상 진단 시스템을 개발했다. 격리된 환자에 약과 음식을 보내주는 무인운반 로봇과 드론에 의한 감시, 체온검사, 소독도 여러 오염지역에 도입하고 있다.
물류기업들은 병원 등에 무인배송차로 배송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 쇼크 이전부터 온라인 진료를 해 온 위드닥터는 24시간 대응, 온라인 진료를 크게 확대했다. 알리바바는 ‘딩딩’으로 불리는 새로운 텔레워크 서비스를 중국 국내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0만개 회사들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현재 중국 국내에서 1800만개 기업에서 3억명 이상이 텔레워크(리모트워크)로 일하고 있다. 신학기가 연기되자 중국 교육부는 사업자와 공동으로 전국 규모의 클라우드 학습 플랫폼을 띄웠다. 초중고생 1억8000만명이 네트워크 수업을 받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앞선 행동들에 대해 미국 시사지 포린 어페어즈는 ‘중국의 디지털 독재주의’라고 꼬집지만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승리’ 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한국은 나름대로 방역에 성공하면서 선진 의료시스템을 과시하게 됐다. 다른 나라들이 1차 관문에서 머물고 있는 사이에 중국과 함께 이를 통과해 경기부양과 경제 재도약에 눈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제는 지금까지 제이노믹스(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의 틀 안에서 추진해온 많은 정책을 한국판 뉴딜로 수습해야 한다. 정부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각성,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위기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의 충격 등을 겪으며 온갖 정책들을 쏟아냈다. 코로나 사태와 총선을 계기로 정부 정책도 청와대 위주에서 부처 중심으로 바뀔지 주목된다. 경제중대본은 관료 능력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전문 관료들은 자기 색깔을 내면서도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고, 여의도(정치)를 설득하고, 정책으로 국민을 공감시키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거대여당에 휘둘리지 않고 그 능력을 정책에 활용하길 기대한다.
현 시점에서 보면 청와대발 고용유지선언과 대기업 역할을 기대하는 자세에서 작은 정책 반전이 읽힌다. 경제중대본이 오는 6월초 발표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이 작은 반전을 큰 변화로 이끄는 방책들이 담기길 기대한다. 2020년 관료들의 여름은 어느 때보다 뜨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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