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 여기 묻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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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입력 2020-05-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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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인조반정 뒤 광해군 자손들의 운명 · 황호택(서울시립대) 이광표(서원대) 교수 공동집필


광해군의 장남 이지(李祬)는 1598년(선조 31)년에 태어나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한 뒤 세자(世子)로 책봉되었다. 세자빈 박씨는 광해군 조정에서 권세를 누리다 인조반정 때 처형된 이이첨의 외손녀였다. 이지는 25세 때인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세자가 되고 세자빈과 함께 강화부 교동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됐다.
강화도 옆에 있는 교동도는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강화군 교동면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교동도는 강화도와 함께 왕과 왕족의 유배지였다. 서울과 가까운 섬이라 감시와 격리가 편리했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이 섬에서 역질에 걸려 죽었다.

강화군 교동도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왕과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강화군이 유배지를 복원해놓은 모습. [사진=인천관광공사]


친형 임해군과 조카 능창군을 교동도에 유배보냈던 광해군은 그 자신도 교동도에 유배되는 신세가 됐다. 병자호란이 나자 광해군은 강화도에서 교동도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제주도로 마지막 이배(移配)길을 떠났다. 광해가 영창대군을 죽인 것을 인조반정의 명분의 하나로 삼았기 때문에 인조는 광해군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등이 일어났을 때 광해군이 다시 옹립될 것을 염려해 유배지를 바꾸었다. 

교동도 유배지서 땅굴 파 탈출했던 왕세자

이지는 교동도 유배지에서 세자빈과 함께 수
의를 만들어놓고 보름 동안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으며 비폭력 저항을 했다. 이지가 세자빈과 함께 목을 맨 것을 여종이 발견하고 풀어준 적도 있다. 그러다 한양에서 보내준 가위와 인두를 이용해 세자는 직접 땅굴을 파고 세자빈이 흙을 자루에 담아 퍼 날라 방안에 숨겨두었다. 평생 손에 흙 안묻히고 살았을 왕세자가 26일 만에 70척(약 21m)의 땅굴을 완성했다.
야심한 밤에 땅굴을 나온 세자는 미리 연락해 해안에 대기시켜놓은 배를 찾아나섰지만 길을 잃고 헤매다 탈출 3일 만에 나졸들에게 붙잡혔다. 남편이 달아날 때 세자빈은 나무 위에 올라가 살펴보다가 떨어져 몸을 상했다. 세자빈은 남편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목슴을 끊었다. 세자빈이 유배지에서 자진(自盡)하자 호조가 옷과 이불을 보내 염습하고 빈소를 차려주었다.

 봉인사 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에는 왕세자 이지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영의정 이원익과 인열왕후(인조의 왕비)가 폐세자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반대했으나 인목대비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의 논의를 거쳐 '자진하여 죽으라'는 명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삼사의 논의에서 인조반정 때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는데도 강화부윤과 장수들 앞에서 “호걸의 일을 행하겠다”고 거리낌없이 발언했다는 고변이 나왔다. 인목대비가 광해군과 폐세자 이지의 처리에 관해 가장 강경했다. 광해군 치하에서 친정아버지와 아들 영창대군이 죽고 친정어머니는 제주 관아의 노비가 되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으니 철천지한(徹天之恨)이 맺혔을 것이다. 
인조실록에는 폐세자의 마지막 처신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의금부 도사가 자결하라는 명을 전하자 폐세자는 몸을 씻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갖추었다. 이어 칼을 찾아 손톱과 발톱을 깎으려 했으나 도사가 허락하지 않자 "죽은 뒤에 깎아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폐세자는 자리를 펴고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한 뒤, 광해군이 있는 서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방안에 들어가 스스로 목을 맸으나 중간에 줄이 끊어졌다. 이번에는 명주실 줄로 바꾸어 종내 세상과 하직했다.

 폐세자 이지의 묘소는 대군의 묘제(墓制)로 조성됐으나 누가 묻혔는지를 알려주는 표석이 없다. [사진=황호택]

최근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부근서 무덤 발견
폐세자의 묘소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가 세자빈과 함께 수락산 옥류동에 묻혔다는 고서의 기록에 따라 남양주시립박물관은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에 인공위성 사진으로 찾아낼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최근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됐다. 이 무덤은 덕흥대원군(선조의 부친)의 원찰인 흥국사에서 가까운 전주 이씨 종산에 있다. 덕흥대원군 묘소로부터 700~800m 떨어진 산기슭의 상단에 공들여 석축을 쌓고 묫자리를 잡아 위계가 높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병풍석과 무인석 등 석물의 규모로 보아 대군(大君)의 묘가 분명한데도 특이한 점은 누구의 무덤인지를 알려주는 묘표석이 없다는 것이다. 인조와 폐세자는 조부(선조)가 같은 사촌간이다. 인조는 전주 이씨 종산에 대군의 예에 따라 폐세자의 묘소를 만드는 것을 허용했으나 종친들이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묘표를 세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확한 것은 발굴조사를 통해 묘지석을 확인해 봐야 알 수 있다.
폐세자가 위리안치 중에 지었다는 한시가 속잡록(續雜錄) 연려실기술 같은 야사서에 전한다.

본시 한 뿌리인데 이다지도 야박할쏜가(本是同根何太薄)
하늘의 이치는 서로 사랑하고 슬퍼해야 하지 않소(理宜相愛亦相哀)
어떻게 하면 이 유배지를 벗어나( 緣何脫此樊籠去)
녹수청산 자유롭게 오갈꼬(綠水靑山任去來)

죽임을 당한 영창대군이나 인조의 동생 능창군도 죽어가면서 '본시 한 뿌리인데 이다지도 야박할쏜가' 하고 광해군을 원망했을 것이다. 아버지 광해군이 뿌린 원한의 씨를 세자 이지가 거둔 셈이다.
자정전에서 논어 주강(晝講)을 할 때 신하들이 인조에게 "이지의 딸을 궁녀가 기른다하니 옷과 양식을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주청했으나 인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신하들이 거듭 주청해도 침묵을 지키던 인조는 논어 주강(晝講) 이 파할 무렵에야 "폐세자 이지의 딸과 광해의 후궁이 낳은 딸이 장성할 때까지 해조에서 식량을 주도록 하라"고 명했다. 목숨을 내놓고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된 인조는 광해에 대한 미움과 그의 피붙이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궁녀가 기르던 이지의 딸은 의성김씨 집안의 김문거에게 하가(下嫁)했다. 의성김씨 족보에 따르면 김문거는 자녀가 없어 김진이라는 양자를 들였다. 김진은 밀양 박씨와 혼인해 김용윤과 김용징을 낳았고 그 이후의 계보는 알 수 없다.

광해군의 옹주는 사릉리 공동묘지 묻혀 있어
광해군에게는 후궁 소의(昭儀) 윤씨에게서 난 옹주가 있었다. 윤씨는 인조반정 이튿날 '음행(淫行)을 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다. 옹주는 어머니를 잃고 궁에서 쫓겨난 뒤 외삼촌 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폐주의 딸이라 당시의 시대상으로 혼기를 넘겨 스무살이 되어도 혼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1641년 광해가 제주도에서 죽은 뒤에 인조는 옹주를 불러 광해군이 살던 본궁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상기가 끝나고 혼인을 하자 혼수를 주었다. 옹주는 음성박씨 문중의 박징원에게 하가(下嫁)해 2남 3녀를 낳아 기르다가 1664년(현종 5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종은 장례 물품을 보내주었다.

남양주에는 광해군의 유일한 딸인 옹주의 무덤이 있다. 그녀는 혼기를 넘겨 시집가 2남 3녀를 두었으며 친자가 없는 아버지의 제사를 모셨다. [사진=남양주시청]


옹주의 무덤은 진건면 사릉리 산림청 소유의 공동묘지에 있다. 옹주의 무덤에는 묘표석이 없고 묘비에는 전주 이씨로만 기록돼 있다. 남편 박징원의 묘는 2㎞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인조는 논밭과 노비를 옹주에게 주어 외손들이 광해군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옹주의 무덤이 조성되고 나서 국유지 관리가 소홀할 때 다른 무덤들이 들어와 옹주의 무덤을 둘러싼 것 같다. 작은 무덤들 사이에 옹주의 무덤 규모가 눈에 띄게 커 탐방객들이 찾기는 쉽다. 옹주의 무덤에서 200여 m 떨어진 언덕에는 생모 소의 윤씨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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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지원-남양주시(시장 조광한)
협찬-MDM 그룹(회장 문주현)
도움말-남양주시립박물관 김형섭 학예사


<참고문헌>
1. 조선왕조실록(광해군, 인조, 현종)
2. 광해군의 친인척 1,2, 역사문화, 지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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