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빅데이터와 보험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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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기자
입력 2020-08-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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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영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보험연구원]

어린 시절 정부가 물자를 절약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하던 것이 기억난다. 몽당연필을 볼펜에 끼워서 끝까지 사용하고, 공책도 여백에 줄을 그어 남김없이 사용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어려서 절약해야 하는 이유를 몰랐었다.

그러나 좀 더 커서 그 당시에 2차 석유파동이 발발해 국제유가가 2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됐다. 석유가 있어야 산업이 돌아가고 물자를 생산하는데,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기 때문에 석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고, 우리는 수출을 해서 달러를 벌어 그 돈으로 석유를 사와야 한다고 석유의 중요성을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배웠었다.

그런데 최근 제2의 석유가 발견됐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빅데이터(Big Data)이다. 석유가 자동차를 움직이고 석유화학제품을 만들기 위한 필수품이라고 한다면, 빅데이터는 세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제2의 석유라고 불리고 있다.

다만 석유와 빅데이터가 다른 점은, 석유는 중동국가 등 일부 국가에만 매장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지만 빅데이터는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빅데이터를 사기 위해 달러를 벌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어디에 빅데이터가 존재하는가? 답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방문기록도 빅데이터가 되고 카드 사용내역도 빅데이터가 되고, 병원 방문 기록도 빅데이터가 된다.

우리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많이 방문하는지를 조사해 사람들의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고, 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해 어떤 업종이 새로 부각되는지를 알 수 있다.

병원 진료기록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특정 질병으로 고통받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로 이어져 기업효율과 소비자 만족을 높이고 있다. 예컨대 아마존은 특정 지역에서 어떤 주문이 들어올지 빅데이터를 분석해 미리 파악한 후, 고객이 주문하기 전에 배달을 먼저 시작해 배달 시간을 줄이고 있다.

그런데, 빅데이터가 나오기 전부터 데이터 분석에 큰 관심을 가진 산업이 있다. 바로 보험산업이다. 보험은 데이터를 분석해 통계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험을 평가한 후 보험료를 산출한다. 국민 중 몇 사람이 암에 걸리는지, 자동차 사고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를 관련 데이터들을 통해 관찰한다.

그러나 특정 위험에 대한 데이터가 없을 때는 해외에서 데이터를 수입해 사용했다. 과거 CI보험을 최초 개발할 당시 관련 데이터를 구할 수 없어 해외의 데이터를 국내 실정에 맞게 보정해 사용했다.

그런데 CI보험 개발 당시에 관련 데이터가 국내에도 있었다. 바로 의료기록 데이터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민간보험회사가 활용할 수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해외 데이터를 수입해야 했다.

해외 데이터를 국내 실정에 맞게 보정을 했었으나 이를 바탕으로 산출된 위험률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제 위험률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보험료는 부족하거나 과다하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보험회사의 의료 빅데이터 활용이 거론되고 있다. 의료 빅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지면 보험회사들은 더 정확하게 위험을 측정할 수 있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보험료로 보험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과거에는 보험회사가 위험이 높은 소비자들에게 보험상품을 팔지 않았는데 그 위험에 맞는 보험료 산출이 어려워 가입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 빅데이터를 사용해 정확한 위험측정이 가능해지면 고위험 소비자들도 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수명연장으로 인해 고령 소비자들의 보험 수요도 증가하는 데 비해 관련 통계가 없어 보험상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회사가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고령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보험상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보험회사가 고령사회에 대한 대비뿐만 아니라 보다 정교한 위험 분석으로 다양한 위험을 인수해 사회안전망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험회사의 의료 관련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석유가 생산되는 국가들 모두가 휘발유와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국가는 석유는 있지만 가공 능력이 없어 휘발유와 석유화학제품을 오히려 수입을 한다.

제2의 석유라고 불리는 빅데이터도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가 존재하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보험회사들은 해외에서 빅데이터를 가공해 만든 통계자료를 수입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해외 빅데이터 수입가격이 오르면 그때에도 몽당연필을 사용해야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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