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새로 구성된 노동당 지도부는 ‘김정은 시대’의 세대교체와 직제 효율성 제고, 국방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하면서 ‘김정은 유일영도체제’인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1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진행된 제8차 당 대회 중앙지도기관 선거 내용을 전하며 제8기 당 중앙위원회 주요 인사를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제8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 위원장을 비롯해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병철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덕훈 내각총리, 조용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5인 체제를 유지했다.
정치국 위원은 박태성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선전선동부장, 박정천 인민군총참모장, 정상학 당 중앙위원회 비서, 리일환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근로단체부장, 김두일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경제부장, 최상건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과학교육부장, 김재룡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 오일정 당 중앙위원회 군정도지도부장,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 권영진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정판 국방상, 정경택 국가보위상, 리영길 사회안전상 등 14명이다.
정치국 후보위원은 박태덕 당 중앙위원회 규율조사부장, 박명순 당 중앙위원회 경공업부장, 허철만 당 중앙위원회 간부부장, 리철만 당 중앙위원회 농업부장, 김형식 당 중앙위원회 법무부장,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영환 평양시당 책임비서, 박정근 국가개발위원회 부위원장, 양승호 내각부총리, 전현철 당 중앙위원회 경제정책실장, 리선권 외무상 등 11명이다.
◆평균 연령 낮아진 당 지도부…60대 주축 ‘세대교체’
이번 인사의 특징 중 하나는 고령의 인사에서 현업에서 배제되고, 직제의 겸직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최고령 인사였던 박봉주(82세)가 이번 인사를 통해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빠졌고, 77세의 최부일도 은퇴했다. 박봉주는 김정은 정권에서 총리와 경제 담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으로 활동했었다. 최부일은 김 위원장의 유년시절 각별한 인원으로 군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 인민보안상, 당 군정지도부장 등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다.
박봉주가 빠진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는 ‘김정은 측근’으로 꼽히는 조용원 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차지했다. 이로써 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37세인 김 위원장과 60대인 김덕훈(60세)과 조용원(64세), 70대인 최룡해(71세), 리병철(73세)로 평균 연령이 낮아졌다.
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등극한 조용원은 1957년생으로 김정은 정권의 젊은 인사 중 하나다. 그는 앞서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과 함께 제8차 당 대회 집행부로 뽑히며 당 내 정치적 부상을 예고하기도 했다.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던 조용원은 이번 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을 건너뛰고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했다. 동시에 당 부위원장에 해당하는 당 비서가 기존의 10명에서 7명으로 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한자리를 꿰차 ‘김정은식(式)’ 파격 인사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정치국 위원 중 파격 인사의 주인공은 ‘항일 빨치산 2세대’이자 은퇴한 최부일의 자리를 차지한 오일정이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정치국 후보위원을 생략하고 정치국 위원 자리에 올랐고, 군정지도부장 자리도 맡았다.
오일정은 항일빨치산 1세대이자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의 일등공신인 군 원수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3남이고, 나이도 67세로 젊은 인사로 분류된다.
정성장 미국 윌슨센터 연구위원 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노동부 지도부에서의 세대교체가 더욱 진전됐다”면서 “조영원의 공식서열은 5위이지만, 실제로는 김여정과 함께 김정은 다음가는 영향력을 가진 듯하다”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역시 “박봉주와 최부일의 탈락은 고령에 의한 은퇴이고, 조용원 등극은 세대교체”라며 김 위원장의 최측근, 전문관료 중심의 인사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서국 대남·외교 뺀 최정예로···군 지도부도 개편
기존에 10여 명으로 구성됐던 비서국(기존의 정무국) 인사 규모가 7명으로 줄어든 것도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중요시하는 핵심 분야 비서들로만 구성하는 효율적인 당 운영직제를 구축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비서국은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조용원(조직), 박태성(선전), 리병철(군사), 정상학(감사), 리일환(근로단체), 김두일(경제), 최상건(과학교육) 등으로 구성됐다.
눈에 띄는 것은 비서국 인사에 외교 및 대남 담당이 없다는 것이다. 당초 대남 담당 당 부위원장(비서)이었던 김영철은 통일전선부장으로 직책이 강등됐다. 단 정치국 위원 자리는 유지했다.
대외 사업을 총괄했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되고, 당 부장 명단에도 빠졌다. 당초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해 북한 내 권력 ‘2인자’로서의 입지를 굳힐 거라던 전망과 상반된 결과다.
김 제1부부장의 강등과 함께 대남·대미 관련 인사들의 직위도 낮아졌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당 총비서’로 추대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분간 대외 관계보단 내치활동에 집중하겠다는 뜻이 포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일부 대외 강경파 인사가 기존의 지위를 유지한 만큼 김 위원장이 직접 대외관계 전략을 결정하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추가 인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또 북·미 비핵화 협상 등 대외전략을 담당했던 리선권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지위와 위상이 하락했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외교 및 대남 엘리트의 위상이 하락했다”면서 “김정은이 적어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는 외교나 남북 관계보다 내치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리 외무상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가운데 가장 나중에 호명되고, 최선희 제1부상이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된 것을 이유로 제시했다.
다만 지난해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됐을 것으로 예측됐던 리 외무상이 일단은 정치국 후보위원 자리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대외관계를 직접 결정하고, 필요에 따라 관련 인사도 활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북한은 제8차 당 대회에서 국방력 강화에 방점을 두고 국방 부문 조직과 지도부를 전면 재편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북한 군 수뇌부 3인방으로 꼽히는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상 중 조직과 인물이 유지된 것은 박정천 군 총참모장이 유일하다. 총정치국장은 김수길에서 권영진으로 교체됐다. 인민무력성은 ‘국방성’으로 명칭을 변경해, 김정원 인민무력상의 직책도 국방상으로 바꿨다.
북한이 인민무력성을 국방성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체제 수호를 위한 국가방위력 강화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명칭 흐름에 합류해 정상 국가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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