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일주일간의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가 끝났다.
연휴 기간 코로나19 방역망을 뚫고 어렵게 고향을 찾았든,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아쉽게 전화로 새해 인사를 전했든, 미혼자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만나는 사람은 있니?", "결혼은 도대체 언제 할거니?", "온 김에 맞선 보지 않을래?"
한국의 젊은이들도 공감할 만한 고충이다.
올해 25세로 베이징대에서 석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는 양페이(陽妃·여)씨는 "올해는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고향에 가지 않았다"며 "집안 어른들의 결혼 독촉은 매년 겪는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양씨가 비혼주의자는 아니다. 학업 부담이 큰 데다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아 연애나 결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양씨는 춘제 연휴가 시작되기 전 큰맘 먹고 결혼정보업체를 찾아 회원으로 등록했다. 가입비 2000위안은 한 달 생활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액이지만 즉시 효력을 발휘해 연휴 기간 중 베이징 출신 은행원과의 소개팅이 성사됐다.
이번 만남은 기대 이하였지만 양씨는 짬이 날 때마다 다른 남성들도 만나 볼 생각이다. 그는 "업체에서 코로나19 이후로는 화상으로 소개팅을 하거나 선을 볼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회비 낸 게 아깝지 않게 적극적으로 나서 보겠다"고 웃었다.
양씨와 비슷한 연령대의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진입하면서 결혼정보업체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 주링허우가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이다.
정보기술(IT)과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 특성에 코로나19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새로운 짝짓기 문화도 등장하고 있다. 고학력·고소득 미혼자가 많아지면서 회비만 1억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결혼 중개 서비스까지 유행한다.
고질적인 남초(男超·남녀 성비 격차) 현상의 그늘 역시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지방 중소 도시와 농촌 등지에서는 한 해 벌이의 수십 배가 넘는 결혼 비용을 마련해도 정작 신부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또는 너무나 다른 중국의 결혼 풍속도를 들여다보자.
◆코로나로 온라인 맞선·소개팅 성행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대면 접촉이 줄어들자 중국 내 온라인 결혼정보업체와 데이팅 서비스 앱 가입자들이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2억명에 달하는 주링허우 세대가 관련 산업의 주력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결혼 중개 및 데이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위안(佳緣)의 경우 지난해 베이징 지역의 신규 가입자 중 44.09%가 주링허우였다. 또 다른 업체 바이허(百合)도 37.88%가 주링허우로 집계됐다.
지난해 초 바이허에 가입한 한 남성은 "코로나19 발생으로 출근을 못 하게 돼 시간이 많아졌다"며 "그동안 미뤄 왔던 연애를 해보려 전문 업체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자위안과 바이허 등은 음성 소개팅은 물론 고화질 화상 소개팅 서비스까지 제공해 호응을 얻었다.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젊은이들은 온라인 문화에 익숙해 해당 서비스 이용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며 "코로나19로 화상 서비스가 더 각광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업무량이 예년보다 40% 이상 늘었다고 소개했다.
올해 춘제 연휴 때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지난해 말 시작된 중국 내 지역사회 감염이 새해 들어서도 지속되자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훙바오(세뱃돈), 상여금 등을 살포하며 귀향하지 말고 근무지에서 설을 보낼 것을 독려했다.
베이징 차오양구 소호(SOHO)에 입주한 한 데이팅 앱 운영 업체는 "고향에 가지 않고 시내에 머물러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앱 접속량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뒤 실적이 큰 폭으로 뛰니 결제 플랫폼 업체에서 혹시 다단계 마케팅을 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 섞인 문의를 해 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결혼 사냥' 위해 수년치 연봉 투자
결혼중개업체와 데이팅 서비스 업체 이용자 중에는 남성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자위안은 남성 회원이 61.13%, 바이허의 경우 66.67%에 달한다.
당연한 결과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말 기준 남녀 성비(여자 100명당 남자 수)는 104.46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100.5로 성비가 비교적 균형적인 편이다.
중국의 남녀 성비 불균형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30~34세의 경우 101.28 수준이지만 25~29세는 106.65로 격차가 벌어진다.
20~24세는 114.61에 달하고 향후 수년 뒤 결혼 적령기에 도달할 15~19세의 성비는 무려 118.39다. 중국 젊은 남성의 5분의 1이 짝을 못 찾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결혼중개업체와 데이팅 앱, 위챗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운영되는 사교 플랫폼까지 여성 회원은 늘 귀한 대접을 받는다.
단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타깃으로 한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에서 석·박사를 대상으로 하는 사교 플랫폼을 운영 중인 마런이(馬仁義)씨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회원 수가 1만3000명 정도인데 여성이 72%"라며 "연령별로는 1993년생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이 플랫폼은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이른바 중국 1선 도시의 대학원생과 박사만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고학력·고소득 미혼자 중에는 여성 비중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는 게 정설이다. 비슷한 조건의 남성은 이미 결혼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지위에 맞는 배우자를 엄선해 추천하는 이른바 '결혼 사냥(獵婚)' 서비스가 유행 중이다.
베이징 중심가 궈마오 소재의 한 고급 오프라인 결혼정보업체는 졸업·소득 증명서는 물론 집문서와 은행 잔고까지 요구한다.
가입비는 최저 2만9800위안부터 최고 44만1800위안(약 7600만원)까지 다양하다. 최고액의 경우 대기업 직원의 수년치 연봉에 해당한다. 금액에 따라 서비스 제공 기간은 5개월, 8개월, 1년 등으로 달라지고 추천하는 배우자의 경제력도 차이가 난다.
일반 결혼중개업체 회비가 400~1만 위안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비싼 금액이다.
저우쉬(周旭) 베이징건강교육연구회 이사는 "결혼의 의미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와의 차이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결혼에 더 신중하게 됐고 경제적 여유와 독립심을 갖춘 여성일수록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농촌 총각 짓누르는 '삼대산(三大山)'
관영 신화통신은 춘제를 맞아 산시·허난·후난성 농촌 지역 노총각들의 애환을 전하는 보도를 했다.
산시성의 한 농촌 마을 주민은 "현재 600명 정도 거주하는데 장가를 못 간 노총각이 20여명으로 열집 중 한집꼴"이라며 "대부분 서른을 넘었고 마흔이 넘은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중국 농촌에서는 남성이 신부를 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三大件)'로 집과 자동차, 예물을 꼽는다.
이를 구비하는 데 적게는 50만~60만 위안, 많게는 100만 위안(약 1억7200만원)이 넘게 든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농촌의 1인당 연평균 가처분 소득은 1만7131위안(약 295만원)이다. 100만 위안은 58년치 소득을 모아야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3가지 혼수품이 '3개의 산(三大山)'처럼 무거워졌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회자되는 이유다.
상술한 농촌 마을의 경우 집값이 ㎡당 4000위안 정도로 인테리어를 하고 가구·가전까지 들여놓는데 60만 위안 이상이 소요된다. 자동차 가격은 20만 위안 안팎, 금으로 만든 반지·목걸이·귀걸이 등 기본 예물은 15만~16만 위안 수준이다.
후난성 웨양시의 한 농민은 "과거에는 시골에 신혼집을 짓는 데 20만 위안이면 충분했다"며 "요즘은 시내에 50만 위안을 들여 집을 사도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허난성 단청현 첸류러우촌의 류라이리(劉來利) 당서기는 "마을에 결혼 적령기 남성이 44명 있는데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은 32명뿐"이라며 "돈 문제를 떠나 여성이 적은 게 결혼난의 주요 원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최근 5~6년 동안 외지로 시집을 간 여성은 19명이나 되는데 외지에서 시집을 온 여성은 1명도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촌 총각을 재교육해 여성 비중이 높은 업종이나 분야로 진출시키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우슈밍(吳修明) 산시성 싱크탱크발전협회 부비서장은 "도시에는 노처녀가 많고 농촌에는 노총각이 많다"며 "도농 간 격차를 줄여 도시 여성이 농촌에 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방정부가 농촌 남성들에게 기술·직업 훈련을 제공해 여성이 많은 지역으로 '수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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