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법까지 고쳐가며 마련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이 까다로운 대출 요건으로 기업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돈을 퍼준다’는 지적을 피하려고 까다로운 대출 요건을 내민 탓이다.
16일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에 따르면 5월 현재 기간산업안정기금 재원 40조원 가운데 5875억원을 지원해 전체 소진율이 1.4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실적이 낮은 이유는 지원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기금지원 대상은 코로나19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항공‧해운 등의 업종으로 한정됐고, 총 차입금 5000억원 이상, 근로자 300인 이상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또 기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6개월간 90%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지원조건에 맞는 기업은 극히 드물었다. 대한항공, HMM 정도가 후보군으로 꼽혔다. 이를 제외하면 돈을 받은 이후 고용유지와 이익공유를 목적으로 지원금액의 최소 10%는 주식연계증권 취득 형태로 지원하는 것 등이 부담으로 작용해 기업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처럼 지원 접수가 지지부진하자 결국 금융위 기간산업안정기금운용심의회는 지난해 7월 자동차, 조선, 기계, 석유화학, 정유, 철강, 항공제조 등 7개 업종을 추가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결국 금융위 기간산업안정기금운용심의회는 지난달 30일 종료 예정이었던 기금운용을 올 연말까지로 8개월 연장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지원 대상 기업의 확대와 지원 요건 완화로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정체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연구소인 대한상의 SGI는 “코로나19 이후 산업구조 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사업재편 및 구조조정 희망기업을 포함시켜야 한다”면서 “차입금, 근로자 수 및 고용유지 등 지원요건도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정체는 코로나19 장기화가 낳은 전시성 행정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지원은 해야겠고, 자칫 포퓰리즘 지원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다 보니 까다로운 요건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조선, 해운 등 기간산업에 대해 지원에 나선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지원 대상 업종이 한정됐고, 지원 이후 지켜야 할 조건이 까다로워 되레 코로나19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가로막는 장애 요건으로 작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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