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희망브리지는 사단법인 민간단체다. 태풍·홍수 등 자연재해와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사태 등 사회재난 발생 시 앞장서서 의연금을 배분해왔다. 의연금은 자선·공익 목적으로 모으는 기부금을 말한다. 그동안 이웃에게 전달한 금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최근 이사회 구성 문제로 행정안전부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행안부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희망브리지에 대한 법적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투명한 성금 배분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곧 개정안 의결 당위성으로 귀결된다.
이런 움직임에 희망브리지는 "순수 민간단체를 정부가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모욕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그보다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재난재해 극복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미국 뉴저지주 소도시 팰리세이즈파크와 로스앤젤레스(LA) 한인회 등에 지원하는 KF94 마스크 4만장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화물기에 실리고 있다. [사진=희망브리지]
갈등의 불씨를 지핀 개정안은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 대표 발의해 최근 국회에 상정됐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협회) 배분위원회에 행안부 장관이 지명하는 사람들을 넣고,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회계연도 시작 2개월 전까지 행안부 장관에게 제출해 승인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배분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위원장 1인·부위원장 1인을 포함해 20인 이내로 하고, 협회 및 모집허가를 받아 의연금을 모금한 모집기관(협회 제외), 행안부 장관 등이 지명하는 사람이 각기 과반수를 넘지 않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협회는 "의연금 모집 허가는 행안부 권한이므로, 의연금 모집기관에서 참여하는 배분위원들은 당연히 행안부 입김에 놓이게 된다"고 비판했다. 행안부 장관이 직접 지명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결국 행안부는 배분위원 3분의2가량을 장악하게 된다는 판단이다.
행안부가 국민 성금을 세금처럼 쓰려는 의도라고도 주장했다. 협회는 "국민 의연금 모집과 관리·배분에 정부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국민 성금을 정부가 예산처럼 사용하고, 선심용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에 각종 독소 조항을 삽입해 협회를 정부 산하기관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은 민간 중심 구호활동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의연금 3분의1 이상을 잉여금으로 이월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이 그렇다. 협회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당·정은 개정안의 당위성으로 의연금 납입액이 지원금보다 179억여원 많았던 지난해 사례를 들며 협회가 매년 수백억원 보유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금은 세금과 달리 걷히는 액수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게 협회 설명이다.
협회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배분위원회로 약 1477억원이 납입됐고, 이보다 168억원 많은 1645억원이 이재민에게 전달됐다"며 "168억원은 정부 지원이 아닌, 저희가 아껴 비축한 재난준비금에서 충당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행안부 한 고위 관료는 비무장지대 내 정부가 조성한 전략촌이 잦은 수해를 겪자 마을 전체를 이주시키는 데 의연금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연금을 애초 목적과 다른 엉뚱한 곳에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반면 행안부는 의연금이 투명하게 집행되도록 지도·감독하기 위해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에서 정한 사무검사 권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사무검사는 지난해 이뤄졌다. 유튜브와 일부 언론에서 협회 관련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근로기준법과 협회 정관 등을 위반한 혐의(9건)를 적발해 주의·시정 조치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협회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행안부는 보고 있다.
행안부는 "협회가 재해구호법에 근거해 국민이 낸 의연금 일부를 기관운영비로 사용하고 있어 이에 대한 엄격한 투명성이 요구된다"며 "개정안은 향후 국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 처리될 것"이라고 전했다.
협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협회는 "배분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할 수 있는 사항과 의연금 사용 범위가 법령으로 정해져 있는 데다 행안부와 협의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행안부 스스로 협회에 강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산하기관화 처음 아냐··· 발전 모색해야"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열린 지진 대응 훈련 '2020 셰이크아웃(ShakeOut) 코리아'에서 관계자들이 지진 발생 상황을 가정해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개정안 추진 움직임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협회에 따르면, 2006년에는 의연금 배분 권한을 당시 소방방재청이 갖도록 하려다 무산됐고, 2017년에는 정부 출연금이 전혀 없는 협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다가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2018년에 이번과 유사한 개정안을 내놨으나 행안부 '갑질' 논란 등으로 물러서기 바빴다.
협회는 "(행안부가) 그동안 절치부심하다 다시 법 개정에 나선 것"이라며 "협회를 산하기관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정부 성격이 어떻든 재난 상황에서 많은 액수를 신속하게 피해자들에게 줘서 생색도 내고 민심도 달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미다.
다만 지금처럼 민주당이 국회 의석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민주당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협회는 개정안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 "재해구호 활동을 '행안부 수탁 업무'로 보는 시각부터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도 하나의 단체로서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성금이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되고 집행 시기를 서두르다 형평성 문제 등이 불거질 수 있어 정확한 피해자 집계부터 시작해 절차를 꼼꼼히 지켜야 한다.
개정안 문제는 내부 임직원뿐만 아니라 배분위원회(이사회)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회의에서 위원들은 "협회를 행안부 산하기관으로 두려는 시도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협회 이사 전원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 전근대적인 행안부 행태를 부각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이자"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지금 시급한 일은 각종 재난재해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지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재난재해는 날이 갈수록 위력이 강해지고 종류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여러 가지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복합재난' 성격으로 바뀌는 추세다.
협회는 "재난재해 응급상황에 대한 민·관 합동 대응 매뉴얼 정비, 재난 구호물품 물류·보관시설 확충,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보살핌 등 정부와 협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개정안을 둘러싼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피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으로 누가 피해자가 될지,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현실을 피력하면서 "희망브리지라는 단체 명칭 그대로 재난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다리가 되도록 앞으로도 밤낮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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