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지난 16일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이순자씨를 예방했다. 앞서 14일에는 국민의힘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의 부인 11명과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오찬 회동을 가지기도 했다. '조용한 내조'를 표방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김 여사의 행보는 '광폭 행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중진 의원 배우자들 만나 '언니'…"소탈한 모습"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여사는 전날 오후 이씨의 연희동 자택을 방문해 90여분간 환담을 나눴다. 이씨의 자택 앞에서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져왔나'라는 취재진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오후 브리핑에서 "전직 대통령 부인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조언을 듣겠다는 것은 (김 여사가) 원래 생각했던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일환으로 오늘도 찾아뵌 것이다. 비공개로 조용히 다녀올 계획이었고, 같이 가는 인원의 규모도 최소화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미리 알려졌다"며 "당초 의도는 조용히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의 배우자들과도 오찬 모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오찬 회동이 성사된 계기에 대해 "4선, 5선 중진 의원 부인들이 선거 때 고생 많이 했으니 감사도 표시하고 격려도 표시하면서 한번 보자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준석) 당 대표가 부인이 없으니 (김 여사 측은) 당연히 원내대표 부인한테 요청했다"며 "그래서 우리 마누라(부인)가 연락해서 같이 만난 것이다. 만나서 유익한 시간을 가졌고, (김 여사가) 굉장히 예의를 갖춰서 얘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권 원내대표는 "중진 의원 부인들이 나이가 많지 않나. (김 여사가) '사모님' 했다가 '언니들' 했다가, 우리 집사람한테도 '사모님' 하다가 '언니'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건 소탈한 거다"라고 부연했다.
김 여사 측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예방도 물밑 조율 중이다.
◆대선 기간 동안 공개 행보 '제로'…"조용한 내조" 표방
김 여사는 대선 기간 동안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여사가 공식적으로 언론 앞에 선 것은 지난해 12월 26일 '허위 이력 논란' 해명 기자회견 때뿐이었다.
통상 대선 후보의 배우자는 '정치 내조'를 내세워 후보자의 대선 일정을 함께하거나 개별적으로 일정을 진행한다. 그러나 김 여사는 대선 기간 내내 거론된 '배우자 리스크'의 장본인으로서 비공개 활동 위주의 조용한 내조를 이어갔다.
'배우자 리스크'가 불거진 계기는 허위 경력 기재다. 논란이 거듭되자 김 여사는 역대 대통령 후보 배우자 사상 첫 '사과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김 여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다"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다. 부디 용서해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 여사는 이후 한 달여 만인 올해 1월 23일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고 포털에 프로필을 등록했다. 설 연휴를 기점으로 활동을 시작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한때 나오기도 했으나 실제 공개 행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설 연휴를 맞아 안양소방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배우자의 공개 행보 계획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김 여사는 대선 기간 동안 비공개로 종교계 인사들을 만났다. 김 여사는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원명 스님을 만나 비공개 차담회를 가지기도 했다.
◆공개 행보 이어지며 수면 위로 떠오른 '제2부속실'
김 여사의 공개 행보를 둘러싸고 '제2부속실' 부활에 대한 정치권의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김 여사가 최근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 제2부속실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힘을 받고 있어서다. 제2부속실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폐지됐으나 최근 김 여사의 공개 행보가 연일 잡음을 일으키면서 그 필요성이 대두됐다.
특히 김 여사가 지난 1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을 당시 공식 수행원이 아닌 지인이 동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2부속실 설치 여부는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이 확보하지 못한 사진 자료가 김 여사 팬클럽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고,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 전직 직원이 대통령실에 채용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두고 "명백한 사적 채용"이라고 비판했다. 신정훈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전날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 "대통령 부인을 수행하는 공무에 사인이 일정을 함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권 내에서도 제2부속실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은 전날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제2부속실 설치 여부를 논의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최고위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회의에서 제2부속실) 논의가 있었다. 제2부속실이니, 누가 담당하니 이런 문제보다는 사적인 경로로 정보들이 계속 유통되는 상황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인이 사진을 유출 또는 입수해서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언론이나 공적 조직은 정보가 늦는 상황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도 제2부속실 설치 검토를 회의에서 요구했다. 김 최고위원은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해주길 바란다"며 "대선 과정에서 김 여사는 조용한 내조를 말했고 대통령도 제2부속실 폐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영부인이라는 자리의 역할과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영부인의 내조는 공적 영역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오전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제2)부속실을 안 두니 팬클럽이나 김 여사 개인 회사 직원들이 부속실을 대체하는 일이 벌어진다"며 "차라리 깔끔하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고 제2부속실을 만드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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