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가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은 재정건전성을 핑계로 국민과 국가의 빈곤화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일단 출발은 해묵은 ‘경제 활력 제고’이다. 이를 위해 기재부는 강력한 감세를 예고하고 있다. ‘2023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법인세, 근로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에서 전반적인 과표구간 단순화와 세율인하를 통해 모두 14조원 감세가 추진된다, 법인세는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할 예정이다. 낮은 법인세율이 투자를 촉진한다면 법인세율이 15% 단일세율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리투아니아에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밀려들었겠지만 그런 소식은 없다. 투자는 법인세율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감세에서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불평등 심화를 뜻하는 ‘분수효과’가 초래되었음은 공인된 사실이다. 감세는 ‘나라 곳간 비우기’일 뿐이다.
감세로 세수가 줄어드니 세출을 같이 줄이기 위해 제시된 명분이 재정건전성이다. 2023년 예산안에는 전년 대비 24조원의 지출‘재구조화’가 예정되어 있다. 그 희생양은 1차적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노인일자리 창출, 임대주택 건설, 지역화폐, 중소기업 지원 등 ‘민생’을 위한 지출의 삭감이 예고되었다. 지난 수해로 숨진 ‘반지하 세가족’에도 불구하고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5조6천억원, 25% 이상 줄었다. 공공일자리는 6만1천개가 줄었다. 진정성 있는 재정건전성이 되려면 세수확충부터 챙겨야 할 것이다. GDP대비 재정적자 3% 이내의 재정준칙은 다가오는 장기 경기침체에 ‘가난해질 결심’을 하는 것과 같다. 일자리가 있는 청장년들에게는 ‘더 많은 일을 할 자유’의 이름으로 주52시간의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있다. 일이 많거나 많아지면 노동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을 늘려서 해결해야 ‘워라밸’이 살아난다. 노동시간의 연장은 “고용의 증진에 노력”(제32조①항)해야 하는 국가의 헌법상의 책무에 반한다.
국가 재정과 관련 기재부의 자의적인 행태는 국유재산 매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초 기재부는 “유휴·저활용” 국유재산을 “향후 5년간 총 16조원+α 규모로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매각을 추진하는 9곳의 국유재산 중 6곳이 서울 강남구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강남 소재 6곳은 물납부동산(노후 주택) 3곳, 소규모 유휴지 2곳, 노후 관사 1곳”이라 해명했지만 이 역시 거짓이었다. 강남 지하철역 대로변의 수익성 있는 건물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주장하는 공개입찰방식에 의한 매각도 지난 5년의 실적을 보면 매각재산의 2.8%(금액 기준)에 지나지 않았다. 반복되는 거짓 해명은 국유재산 매각 의도에 관한 의구심만 키웠다. 금년도 국유재산 매각을 정기국회 이전인 8월 말까지 마치도록 지시한 것은 이 의구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2017년 석유공사 사옥 매각과정은 모피아가 국유재산을 어떻게 ‘셀프서비스’하는지 보여준다. 석유공사는 1860억원을 들여 지은 사옥을 매각 후 재임대해서 5년 동안 480억원의 임대료를 지불했다. 5년 후 사옥을 재매입하려면 250억 내지 300억원의 웃돈을 주어야 한다. 매각은 공공기관 부채를 감축하고 방만경영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유일호 장관의 지시로 이루어졌지만 매각대금은 실제로 부채감축에 사용되지 않았다. 2018년 감사원은 자산매각이 석유공사에 오히려 손해였음을 밝혔다. 매입자 코람코자산운용은 기재부 출신 퇴직관료들의 회사로 유일호 전장관도 사외이사로 등록되어 있다. 국유재산 매각이 모피아에 의한, 모피아를 위한 ‘셀프서비스’가 된 사례이다. “공공기관의 파티”가 아니라 “모피아의 파티”가 종식되어야 한다. 그리스는 2010년 전후한 국가부도 상황에서도 국유재산을 매각하라는 국제투기자본의 권고를 거부했다. 문자 그대로 매국(賣國)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소멸은 인구감소(출생율 저하)에서 시작해서 경제적으로 인적자본의 축소를 거쳐 지방소멸로 이어지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0.7명대의 기록적인 저출산은 경제적으로 인적자본의 감소와 고갈을 의미하며 대한민국이 가난해지는 것을 뜻한다. 윤석열정부는 인구감소에 따른 대한민국의 소멸을 개인의 ‘자유’에 맡기려는 듯 무관심하다. 그래서 저출산에 대응이 아니라 적응하려는 것 같다. “인구감소에 따른 대한민국 소멸”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인구 4000만에 국민소득 10만달러”의 시대를 준비하자는 보수 경제지의 공상소설 같은 기사마저 등장했다. 인구 감소와 대한민국의 빈곤화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보다 ‘사람 살기 좋은 나라’가 우선되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기업의 대미 투자를 “가장 안전한 환경과 최고의 노동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미래의 미국에서는 미국 공장에서 미국인 노동자가 만든 미국 제품을 사용”할 것이라 공언했다. 현대자동차의 ‘등에 꽂힌 칼’이 빠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가까운 장래에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휩쓸려 한국기업의 해외진출 역시 활발해지면서 좋은 일자리도 수출될 것이다.
경제활성화를 빌미로 감세하고 재정건전성을 핑계삼아 복지지출을 감축하여 인적자본을 축소하고 국유재산을 매각하면 나라는 가난해진다. 재정건전성을 출발점으로 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한다면 축소형이 아니라 확장형 재정건전성이어야 한다. 아울러 대한민국 기재부의 경제정책에서 언제나 ‘서자’ 취급받는 ‘내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감세보다 정부지출 증대가 더 높은 승수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경제학원론의 기본명제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완화하여 ‘분수효과’를 차단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세계 경제학계의 합의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공허한 자유지상주의에 매몰된 정치경제는 단선적이고 편협한 정책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력하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희망의 나라”(현제명)에서는 “자유, 평등, 평화”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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