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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칼럼] 기술패권 시대… R&D 투자 총력전 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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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22-09-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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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바야흐로 과학기술이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기술패권시대이다.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의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승부가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1979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 추진 선언 이후 40여 년간 고속 경제성장 가도를 달려와 2021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74%에 달하며 미국의 아성을 넘보는 명실공히 G2 국가가 되었다. 미국의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 중국이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정책을 문제 삼으며 시작된 미·중 갈등 및 무역 전쟁은 현 바이든 정부에서 기술패권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향후 기술 패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자원이나 환율, 금융 패권으로 전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중 패권전쟁의 단초가 된 ‘중국제조 2025’는 중국 기술수준을 2025년까지 2015년 당시의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술선도국 수준으로 올리고, 2035년까지 당시의 기술선도국과 동일 수준을 이루며, 2045년에는 세계 최강의 제조강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30년 계획이다. 과거 미국은 세계 패권을 지키기 위해 소련, 일본 등 2위 국가들이 미국 GDP의 60% 선을 넘지 못하도록 견제해왔다는 주장이 있다. 중국 제조업의 발전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가 실업 문제를 야기하고 중국 GDP가 미국의 70% 선에 빠르게 육박해오자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칼을 빼든 것이다. 사실상 ‘중국제조 2025’ 정책이 성공하면 미국만이 아니라 무역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중심 국가인 우리나라도 지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현 바이든 정부는 과거 트럼프 정부 무역 전쟁의 실효성이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하여 근본적이고 보다 강력한 기술 전쟁으로 돌입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경중안미’ 노선은 이제 중대한 변화나 수정이 불가피하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상황이다. 우리 수출의 중국 비중이 25%를 상회하고 사실상 중국향인 홍콩을 포함하면 30%를 훌쩍 넘고 있어 경제적 대안이 쉽지 않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도 우리에게는 필수적인데 이 역시 대안이 만만치 않다. 결론적으로 이 난국을 돌파해 나가는 길은 미국과 중국에 모두 필요하여 우리를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 확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미래 산업 패권을 좌우할 세계적 트렌드인 디지털·그린·인류문명 대전환 대응도 결국 기술력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 주목하고 있는 반도체 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반도체 기술도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으나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핵심인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시스템 기술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초격차의 3나노 극초미세 공정 기술은 대만과 경쟁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은 물론 우리가 우위에 있거나 조기 우위 가능성이 큰 기술 분야에 대한 국가적 집중 투자로 최소 대여섯 개의 초격차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지난 6월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내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안을 살펴보면 올해 대비 1.7% 증액한 24.7조원 규모로 주요 정책분야에 대한 전략적 투자 강화, 국민 체감성과 창출 촉진, 선택과 집중을 통한 투자 효율화에 역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국가 전략기술 개발과 함께 시급한 디지털 대전환 및 그린 대전환 대응 기술 개발 등 2030 과학기술 선도국가(G5) 도약을 위한 정부 R&D 전략으로 일견 손색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가 작금의 미·중 패권전쟁 등 일촉즉발의 비상 상황에 처해 있고 그 해법이 초격차 기술 확보에 달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획기적 보완이 시급하다. 먼저 어려운 재정여건을 감안하여 금년 대비 1.7% 증액에 그친 점은 이해가 가나, 과학기술이 국가 명운을 결정하는 기술패권 시대와 산업 대전환을 주도하는 디지털·그린·문명 대전환 시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른 예산을 조정해서라도 당분간 최소 연 10% 대의 대폭 증액이 필요하다.
 
정부 R&D 투자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증가해왔으나 투자 대비 성과나 효율이 떨어진다는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 GDP 대비 R&D 투자는 정부와 민간 R&D를 합쳐서 2020년 4.8%로 이스라엘(5.4%)에 이어 세계 2위라는 점에서 R&D 투자가 많은 나라라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중국, 독일, 일본과 거의 모든 산업에서 경쟁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GDP 대비 R&D 투자 비율보다 R&D 투자 절대금액이 훨씬 중요하다. R&D 투자 절대금액에서 미국은 우리보다 10배, 중국은 6배, 일본은 2배, 독일은 50% 이상 많다. 미국, 중국 수준은 어렵더라도 글로벌 시장의 주요 경쟁국인 일본과 독일 수준까지는 올려야 기술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진다. 국가 R&D 투자 전체의 23.4%에 불과한 정부 R&D 투자를 전략기술에 먼저 확대하면서 민간 R&D가 따라올 수 있도록 R&D 세제 지원, R&D 인프라 및 인력 양성 등 인센티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로, 경제 안보 및 기술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필요로 하는 초격차 기술 확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명심하여 초격차 기술 개발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발표된 R&D 예산안에 따르면, 아직 잠정안이지만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차세대원전, 수소, 5G/6G 통신 등 초격차 전략기술에 1.1조원, 첨단바이오, 우주·항공, 양자, 인공지능·로봇, 사이버보안 등 미래 도전기술에 2.4조원, 디지털 대전환 기술에 2.4조원, 그린 대전환 기술에 2.3조원을 배분하였다. 현 투자 배분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정상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계획이나 우리나라가 처한 작금의 비상 상황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 기술 및 경제 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초격차 기술 개발 예산의 대폭 증액과 대상 기술의 전략적 선정으로 집중적 성과 창출이 시급하다. 자체 개발에 장기간이 소요될 기술은 전략적 제휴, 인수합병, 기술 매입 등을 통한 투자로 시간을 단축할 필요도 있다.
 
셋째로, R&D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시급하다. 국내 인력만으로 충분치 않으면 외국 인력 유치나 해외 연구소 확충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해외 기업이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리 해외 인재 유치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기술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 육성도 기술 인력을 키우고 기술 생태계를 고도화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투자 확대 대상이다.
 
이제 과학기술이 국가와 국민을 살린다. 시간이 많지 않다. 국가적 총력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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