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직 축출에 맞서 항전하던 이준석 전 대표가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지난 6일 법원은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에 대해 효력을 멈춰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같은 날 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이 전 대표가 당에 대한 모욕적 표현과 잇따른 가처분 신청 등으로 당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추가 징계를 결정했다. 당의 만류를 거부하고 다시 한번 가처분 신청을 냈던 이 전 대표가 2연패함으로써 국민의힘 안에서 그의 입지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년 초로 예상되는 차기 전당대회 출마도 불가능해져서 당대표직 복귀의 꿈은 접어야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기존 6개월에 1년이 추가되면서 총선이 있는 2024년 1월까지 당원권이 정지된다. 이렇게 되면 이 전 대표가 22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 되었다.
이쯤 되면 이 전 대표는 단지 당내 입지가 축소된 것을 넘어 정치생명 자체가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불과 1년 4개월 전 ‘이준석 신드롬’을 낳으면서 거대 보수 야당의 30대 대표가 되었던 그였다. 우리 정치의 숙원인 세대교체가 이준석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여야 불문하고 이어졌다. 그런 그가 오늘 이렇게 추락한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물론 이준석을 당대표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데 권력투쟁의 측면이 있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집권 여당이 집권 초에 이렇게 격한 내분에 휩싸인 것도 초유의 일이었다. 앙숙과도 같았던 이준석과 윤핵관들 간에 대결이 벌어졌고,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에게까지 대립각을 세운 이 전 대표를 국민의힘이 내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표적 징계’라 할 만한 무리해 보이는 과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과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당대표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1년 반도 되지 않은 사이에 당심을 잃게 되었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오롯이 이준석 전 대표의 몫이다. 그동안 우리가 지켜봤던 이준석의 정치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기주의 정치’였다. 그는 30대 보수정당 대표로서 철학과 비전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채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정치에 매달렸다. 그에게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공동체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이 사는 공동체, 자신이 몸담은 당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주장이 옳음을 인정받는 일이었다.
남녀를 분열시키고 젠더 갈등을 조장했던 정치, 약자들에게 유난히 공격적이었던 정치도 결국 자기 노선이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정치적 기술이었다. 이 전 대표는 사람들을 껴안는 정치인이 아니라 가르고 다투는 데 매달리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을 껴안을 포용력은 없이 자기 하나만 아는 리더십으로는 애당초 거대 정당을 이끌어가기가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늘 자신의 언변을 과시하며 말재주로 타인에게 이기는 정치를 하려 했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이지, 말싸움으로 이긴다고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이준석 전 대표에게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인문학적 공부를 하라’는 조언이 유난히 많았다. 정치인으로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얘기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조언이 왜 나왔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이 전 대표의 몫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 내에서 입지를 상실한 이 전 대표가 탈당할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총선이 다가오는데 그런 분열의 모험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가 탈당을 해서 신당을 창당한들 과연 누가 그를 믿고 모일지도 의문이다. 여권을 분열시켰다는 비판만 낳기 십상이다. 이 전 대표는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다음 날 본인 페이스북에 “어느 누구도 탈당하지 말고 각자 위치에서 勿令妄動 靜重如山”라는 말을 올렸다. 그가 인용한 '물령망동 정중여산'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태산처럼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당부한 말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두 가지를 판단할 수 있다. 첫째는, 이 전 대표가 섣부르게 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내에서 입지는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당장 탈당을 하는 것이 대안일 수는 없다는 판단을 이 대표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단은 총선 무렵까지 정국 상황과 자신의 공천 여부를 지켜보고 그때 가서 거취 판단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자신을 이순신 장군과 같은 반열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병사들에게 지시를 했듯이, 이 전 대표는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에게 일종의 지시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당원 가입하기 좋은 날’이라는 말을 SNS에 반복적으로 올려왔던 그에게는 지지자들의 힘을 배경으로 권토중래(捲土重來)하려는 꿈이 아직도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태연하게 그런 글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치인 이준석의 날개는 꺾였지만 그렇다고 ‘굽신’ 모드로 돌변하여 생존을 위한 타협의 길을 찾을 것 같지는 않다. 정당 내 권력투쟁에서 빚어진 일들이야 굳이 제3자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때 이준석을 세대교체의 주역이 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끼친 점에 대해서는 이 전 대표가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다. 이 상황에서도 자신만이 옳았다고 강변하며 자기 정치의 승패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가 국민의힘에 있든 나가든 이준석 정치의 앞길은 없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중헌디. 언제나 자기 하나만 중요했던 그가 곰곰이 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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