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아침 “큰일 났다!”는 아내의 목소리에 잠을 깬 나는 이태원에서 일어난 그 ‘참사’를 알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내가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그 시절에 돈 없는 유학생이던 내게 밥을 먹여준 가게가 있던 거리이자 한국어학당이 끝난 뒤 이틀에 한 번쯤 다니던 익숙하고 애착이 있는 동네인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외국인이지만 약 2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2014년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함께했던 나이기에 이번 사고는 더욱 충격이자 슬픔과 안타까움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앞으로는 절대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참사의 사망자 중에는 일본인 2명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을 좋아해서 언젠가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한국어학당에 다녔다고 한다. 최근 일본 유학생들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일부러 하숙집을 선택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국 문화를 배우려 했다고 한다. 고인의 아버지에 따르면 꿈이었던 한국 유학이 성사되어 많이 기뻐했다고 한다. 또 다른 10대 사망자도 한국어학당을 다니면서 나중에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한국에 유학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올해 2월까지 한국 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 관련 수업을 맡아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12년간 학생을 가르친 나에게 특히 20·30대 사망자가 많았던 이번 이태원 참사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게다가 외국인 사망자를 생각하면 약 20년 전 내 모습이 겹치기도 한다. 더불어 지금 일본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에 대해 배우면서 한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약 20년 전 나는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이나 한·일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어학당부터 다녔다. 나는 한국이나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유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시는 지금 분위기와는 전혀 달라서 다른 일본 유학생들도 한국을 좋아하거나 한국에 살고 싶어서 유학을 선택한 경우가 드물었다. 일본에서는 특히 유학이라고 하면 미국 등 서구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더구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가는데 “왜 한국이냐?”고 의아해하는 주변 반응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시와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한국 유학에 특별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한국에 살고 싶다” “한국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유학의 이유가 되고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가 그동안 크게 발전했고, 일본 사회도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은‘선진국’으로 간주되게 되었고, OECD 분류 기준에서도 작년에 ‘선진국’ 대열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2020년 한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며, 선진국 클럽인 주요 7개국 회의(G7)에도 초청됐다.
한편 일본은 오랫동안 이어진 경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선진국 중에서 최저 수준의 실질임금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불리던 일본의 영광은 이미 과거가 됐다. 수직적이었던 한·일 관계도 이제 수평적으로 변해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한·일 경제력은 이미 역전됐다는 분석도 많다. 경제력만이 아니다. ‘한류’로 불리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인기는 멈출 줄 모르고, K-팝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등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산업은 폭넓게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발전과 문화적 파급력이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 결과 내가 과거 경험했던 것처럼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면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저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국 유학을 결정하거나 워킹홀리데이로 체류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한 세대 앞인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한 해 동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수는 1750만명을 넘었다. 그중 일본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은 중국에 이어 둘째로 많은 약 327만명으로 11%를 차지했다고 한다. 2019년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방한하는 일본인이 감소한 해다. 그 후 코로나19가 팬데믹 양상을 보이며 전 세계 국경이 닫히는 상황이 벌어졌고 한·일 관계 악화라는 상황도 흐지부지됐다.
그러던 중 2022년 들어 조금씩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더 이상 경제활동을 멈출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최근 한·일 간 왕래 제한이 풀렸다. 지난 9월 일본인 방한 관광객은 2021년 같은 달 대비 24.1배인 2만756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태원에서 사망한 두 일본인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을 계속 찾지 못하다가 드디어 한국 유학의 꿈이 이루어지자마자 이런 참사를 당하고 만 것이어서 마음이 더욱 아플 수밖에 없다.
나는 올해 4월부터 일본 대학에서 한국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신입생 대부분이 K-팝이나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 지원한 학생들이다. 교수들과 신입생이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대부분 학생들이 K-팝 아이돌 중 자신의 ‘오시(推し-아이돌 그룹 중에서 자신이 가장 밀고 있는 멤버를 가리키는 말로 ‘최애’와 비슷한 말이다)’ 멤버 이름을 말하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그런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BTS 정도였고 그 외 다양한 아이돌 이름들이 나왔지만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K-팝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있어서는 19년에 걸친 한국 생활 경험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본에서 2003년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 붐’ 직전에 한국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일본 내 한류 열풍은 올해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직접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일본에서 ‘욘사마’ 인기가 한창일 때 그것을 신기한 현상처럼 소개하던 뉴스를 나는 한국 언론을 통해 보았다. 한국으로 유학간다고 했을 때 “왜?”라며 신기해 하던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한국에 있는 나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한류 붐(제1차 한류)은 당시 나보다 나이가 많은 40대 이상 여성에게 국한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류는 20대와 10대는 물론 연령을 넘어 심지어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남성을 포함해 일본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3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한류는 그동안 변천을 거쳐 이제 ‘제4차 한류 붐’으로 불리고 있다.
과거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을 때만 해도 소설과 같은 한국 문학까지 일본에서 유행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일본 독자들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특히 인기 있는 것은 가볍게 읽을 수 있거나 특정 사회와 시대 배경이 의미를 가지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 한국 문학과는 다른 매력으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K-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그림책 등이 매년 꾸준히 번역되며 일본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처음에 일본어 발음 그대로 ‘간류(かんりゅう)’였던 한류는 이제 일본에서도 한국어 발음 그대로 ‘한류(ハンリュー)’로 표현되고 있다. 한국 문화가 일본 사회에 얼마나 침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약 20년 만에 거처를 옮기게 된 내가 오랜만에 일본 생활에서 느끼는 한국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다. 물론 내가 사는 후쿠오카라는 지역이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 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리에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한국 음식점,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식재료와 과자, 한국 기업의 가전 등이 적지 않은 것에 놀랄 따름이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한국 요리나 다양한 상품 등이 자주 소개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국 연예인이 언급되는 일도 자연스럽다. 20년 만에 일본 생활에 적응 중인 나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한국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일본에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서점에 가면 여전히 입에 올리기도 불쾌한 표현으로 한국을 비하하는 경박한 다양한 책과 잡지들이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혐한(嫌韓) 서적’이다. 상당수는 한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가짜 전문가가 집필한 것들이다. 한류 팬인 젊은이의 부모가 사실은 혐한 서적 애독자로 자기 자녀의 취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혐한 서적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불황에 빠진 출판업계가 팔리는 책을 안이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이 팔린다는 것은 그러한 한국 인식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일본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한국에 대한 관심은 문화로서 즐기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면 갑자기 획일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토록 한류가 깊게 뿌리내린 현재도 그것은 마찬가지인데, 언론 미디어의 영향과 SNS 등 인터넷 공간의 영향이 작지 않다고 본다.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표현으로 ‘한국’이라는 콘텐츠가 부정적으로도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시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현대사회의 정보 리터러시(information literacy)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다만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데만 치우친 일본 사회의 관심이 혐한 서적 보급을 허용하고 한국과 관련된 것, 특히 재일 코리안에 대한 혐오발언(hate speech)과 혐오범죄(hate crime)를 조장해왔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재일 코리안 민족단체와 학교 건물, 그리고 교토 우토로 지구에 대한 방화와 같은 범죄사건이 벌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하지만 귀한 역사 자료가 다수 분실됐다. 인터넷 공간의 편향된 정보를 근거로 한국에 대한 적대심을 키웠다는 20대 범인은 재일 코리안의 집주 지역인 우토로 지구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역사관 부재 등이 지적되어왔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눈앞의 문제와 자기만의 일로도 버거운 젊은이들에게 사회문제로 눈을 돌릴 여유는 없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정치와 문화를 구별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에서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이 금기시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한 일본에서 한류와 혐한이 양립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모든 일을 정치화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치나 역사의 귀찮은 문제를 외면하고 싶은 무의식의 심정이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증오와 혐오의 씨앗을 키울 수도 있다.
예전에 청소년들 간 한·일 교류 자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학생들과 대면하기 전에 한국 측 인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역사 문제와 관련된 화두는 꺼내지 말라고 못 박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수월한 교류를 위해서 상대방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화제는 피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우선은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그 후에 얼마든지 어려운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연간 1만명이라고 했던 한·일 간 왕래가 이제 연간 1000만명 시대를 맞았다. 하물며 일본에서 한국 문화가 생활 전반에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 시대다. 이제 더는 교류만 하는 시기는 지난 것이 아닐까.
향후 일본에서 한국 문화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황과 역사, 정치, 경제, 한국인의 정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가 진전되었으면 한다. 물론 한국 사회 내 일본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한·일 상호 간에 다른 인식으로 부딪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단단하게 한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일 상호 이해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보다 깊은 상호 이해를 위해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홍익대 조교수 ▲전)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이번 참사의 사망자 중에는 일본인 2명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을 좋아해서 언젠가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한국어학당에 다녔다고 한다. 최근 일본 유학생들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사는 경우도 많은데 일부러 하숙집을 선택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국 문화를 배우려 했다고 한다. 고인의 아버지에 따르면 꿈이었던 한국 유학이 성사되어 많이 기뻐했다고 한다. 또 다른 10대 사망자도 한국어학당을 다니면서 나중에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한국에 유학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올해 2월까지 한국 대학에서 일본어와 일본 관련 수업을 맡아 가르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12년간 학생을 가르친 나에게 특히 20·30대 사망자가 많았던 이번 이태원 참사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게다가 외국인 사망자를 생각하면 약 20년 전 내 모습이 겹치기도 한다. 더불어 지금 일본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에 대해 배우면서 한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가슴이 먹먹해진다.
약 20년 전 나는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이나 한·일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어학당부터 다녔다. 나는 한국이나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유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시는 지금 분위기와는 전혀 달라서 다른 일본 유학생들도 한국을 좋아하거나 한국에 살고 싶어서 유학을 선택한 경우가 드물었다. 일본에서는 특히 유학이라고 하면 미국 등 서구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더구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가는데 “왜 한국이냐?”고 의아해하는 주변 반응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시와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한국 유학에 특별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한국에 살고 싶다” “한국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유학의 이유가 되고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가 그동안 크게 발전했고, 일본 사회도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은‘선진국’으로 간주되게 되었고, OECD 분류 기준에서도 작년에 ‘선진국’ 대열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2020년 한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며, 선진국 클럽인 주요 7개국 회의(G7)에도 초청됐다.
한편 일본은 오랫동안 이어진 경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선진국 중에서 최저 수준의 실질임금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불리던 일본의 영광은 이미 과거가 됐다. 수직적이었던 한·일 관계도 이제 수평적으로 변해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한·일 경제력은 이미 역전됐다는 분석도 많다. 경제력만이 아니다. ‘한류’로 불리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인기는 멈출 줄 모르고, K-팝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등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산업은 폭넓게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발전과 문화적 파급력이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 결과 내가 과거 경험했던 것처럼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하면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저 한국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국 유학을 결정하거나 워킹홀리데이로 체류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한 세대 앞인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한 해 동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수는 1750만명을 넘었다. 그중 일본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은 중국에 이어 둘째로 많은 약 327만명으로 11%를 차지했다고 한다. 2019년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방한하는 일본인이 감소한 해다. 그 후 코로나19가 팬데믹 양상을 보이며 전 세계 국경이 닫히는 상황이 벌어졌고 한·일 관계 악화라는 상황도 흐지부지됐다.
그러던 중 2022년 들어 조금씩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더 이상 경제활동을 멈출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최근 한·일 간 왕래 제한이 풀렸다. 지난 9월 일본인 방한 관광객은 2021년 같은 달 대비 24.1배인 2만756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태원에서 사망한 두 일본인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을 계속 찾지 못하다가 드디어 한국 유학의 꿈이 이루어지자마자 이런 참사를 당하고 만 것이어서 마음이 더욱 아플 수밖에 없다.
나는 올해 4월부터 일본 대학에서 한국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신입생 대부분이 K-팝이나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 지원한 학생들이다. 교수들과 신입생이 첫 대면하는 자리에서 대부분 학생들이 K-팝 아이돌 중 자신의 ‘오시(推し-아이돌 그룹 중에서 자신이 가장 밀고 있는 멤버를 가리키는 말로 ‘최애’와 비슷한 말이다)’ 멤버 이름을 말하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그런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BTS 정도였고 그 외 다양한 아이돌 이름들이 나왔지만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K-팝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있어서는 19년에 걸친 한국 생활 경험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본에서 2003년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 붐’ 직전에 한국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일본 내 한류 열풍은 올해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직접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일본에서 ‘욘사마’ 인기가 한창일 때 그것을 신기한 현상처럼 소개하던 뉴스를 나는 한국 언론을 통해 보았다. 한국으로 유학간다고 했을 때 “왜?”라며 신기해 하던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한국에 있는 나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한류 붐(제1차 한류)은 당시 나보다 나이가 많은 40대 이상 여성에게 국한된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류는 20대와 10대는 물론 연령을 넘어 심지어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남성을 포함해 일본 사회 전반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3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한류는 그동안 변천을 거쳐 이제 ‘제4차 한류 붐’으로 불리고 있다.
과거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을 때만 해도 소설과 같은 한국 문학까지 일본에서 유행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일본 독자들이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일본 소설이 한국에서 특히 인기 있는 것은 가볍게 읽을 수 있거나 특정 사회와 시대 배경이 의미를 가지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 한국 문학과는 다른 매력으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K-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그림책 등이 매년 꾸준히 번역되며 일본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처음에 일본어 발음 그대로 ‘간류(かんりゅう)’였던 한류는 이제 일본에서도 한국어 발음 그대로 ‘한류(ハンリュー)’로 표현되고 있다. 한국 문화가 일본 사회에 얼마나 침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약 20년 만에 거처를 옮기게 된 내가 오랜만에 일본 생활에서 느끼는 한국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다. 물론 내가 사는 후쿠오카라는 지역이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 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리에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한국 음식점, 슈퍼나 대형 마트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식재료와 과자, 한국 기업의 가전 등이 적지 않은 것에 놀랄 따름이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한국 요리나 다양한 상품 등이 자주 소개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국 연예인이 언급되는 일도 자연스럽다. 20년 만에 일본 생활에 적응 중인 나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한국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일본에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서점에 가면 여전히 입에 올리기도 불쾌한 표현으로 한국을 비하하는 경박한 다양한 책과 잡지들이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혐한(嫌韓) 서적’이다. 상당수는 한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가짜 전문가가 집필한 것들이다. 한류 팬인 젊은이의 부모가 사실은 혐한 서적 애독자로 자기 자녀의 취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혐한 서적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불황에 빠진 출판업계가 팔리는 책을 안이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이 팔린다는 것은 그러한 한국 인식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일본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한국에 대한 관심은 문화로서 즐기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면 갑자기 획일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토록 한류가 깊게 뿌리내린 현재도 그것은 마찬가지인데, 언론 미디어의 영향과 SNS 등 인터넷 공간의 영향이 작지 않다고 본다.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표현으로 ‘한국’이라는 콘텐츠가 부정적으로도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시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현대사회의 정보 리터러시(information literacy)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다만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데만 치우친 일본 사회의 관심이 혐한 서적 보급을 허용하고 한국과 관련된 것, 특히 재일 코리안에 대한 혐오발언(hate speech)과 혐오범죄(hate crime)를 조장해왔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재일 코리안 민족단체와 학교 건물, 그리고 교토 우토로 지구에 대한 방화와 같은 범죄사건이 벌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하지만 귀한 역사 자료가 다수 분실됐다. 인터넷 공간의 편향된 정보를 근거로 한국에 대한 적대심을 키웠다는 20대 범인은 재일 코리안의 집주 지역인 우토로 지구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역사관 부재 등이 지적되어왔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눈앞의 문제와 자기만의 일로도 버거운 젊은이들에게 사회문제로 눈을 돌릴 여유는 없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정치와 문화를 구별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에서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이 금기시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한 일본에서 한류와 혐한이 양립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모든 일을 정치화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치나 역사의 귀찮은 문제를 외면하고 싶은 무의식의 심정이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증오와 혐오의 씨앗을 키울 수도 있다.
예전에 청소년들 간 한·일 교류 자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학생들과 대면하기 전에 한국 측 인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역사 문제와 관련된 화두는 꺼내지 말라고 못 박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수월한 교류를 위해서 상대방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화제는 피하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우선은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그 후에 얼마든지 어려운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연간 1만명이라고 했던 한·일 간 왕래가 이제 연간 1000만명 시대를 맞았다. 하물며 일본에서 한국 문화가 생활 전반에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 시대다. 이제 더는 교류만 하는 시기는 지난 것이 아닐까.
향후 일본에서 한국 문화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황과 역사, 정치, 경제, 한국인의 정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가 진전되었으면 한다. 물론 한국 사회 내 일본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한·일 상호 간에 다른 인식으로 부딪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단단하게 한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일 상호 이해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보다 깊은 상호 이해를 위해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홍익대 조교수 ▲전)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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