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정당에 대해 자유로운 현수막 게시를 보장하고 있는 옥외광고물법이 위헌인지를 놓고 심리에 들어가게 됐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도심 곳곳에 자극적인 문구가 담긴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면서 시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변호사단체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에 들어갔다가 제소까지 당한 상태라 헌재 결정에 관심이 쏠린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이날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옥외광고물법 8조 8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 등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8조 8호에 따라 정당 현수막은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더라도 허가·신고 없이 내걸 수 있다. 또 현수막 내용에 정당 명칭과 연락처 등을 기재하면 법정 게시 기간 15일이 지나기 전까지 강제로 철거할 수 없다.
정당 현수막 자유 보장한 옥외광고물법···"국민 기본권·환경권 침해"
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정당들이 어디서든 규제를 받지 않고 현수막을 내걸 수 있게 되면서 전국 곳곳에 현수막이 난립하고 있다. 새변은 이 같은 옥외광고물법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환경권·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국가의 국민안전보장 의무에도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새변은 우선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가 사업 광고를 위해 현수막을 걸려면 지방자치단체 허가·신고가 필요하고 수수료를 내고 지정 게시대에 설치해야 하는데 정당 현수막만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은 일반 시민들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변은 정당 현수막이 헌법상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권을 침해한다고도 봤다. 새변에 따르면 무분별하게 설치된 정당 현수막은 플라스틱 합성 섬유가 주 성분으로 재활용은 20~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80%는 소각돼 온실가스와 1급 발암물질을 발생시킨다.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이 보행자와 차량 통행에 지장을 줘 시민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국민안전보장 의무에 위배된다는 게 새변 측 주장이다.
새변은 "정당 홍보 활동이 오히려 정치 혐오를 키우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소각이 불가피한 정당 현수막을 점점 줄여나가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 불만 커져···지자체 '조례'로 현수막 제한 가능해지나
정당 현수막 난립에 시민 불만이 높아지자 일부 지자체는 조례 개정을 통해 정당 현수막 게시를 일부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천시가 지난 5월 옥외광고물 조례를 개정해 지정 게시대에 걸 수 있는 정당 현수막을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 이하로 제한한 게 대표적이다. 인천시는 또 현수막에 혐오·비방하는 내용을 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인천시 조례에 제동을 걸면서 변수가 생겼다. 조례가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행안부는 곧장 중앙정부의 재의요구 권한을 규정한 지방자치법 172조에 따라 인천시에 재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인천시가 행안부 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자 두 기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인천시는 "현재 옥외광고물법이 헌법상 주민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행안부는 대법원에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낸 상태다.
이번 헌법소원 사건을 담당한 백대용 새변 측 변호사는 "행안부는 조례가 옥외광고물법에 위반된다며 제소한 상태인데 우리는 그 옥외광고물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먼저 따져보자는 취지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됐다"며 "옥외광고물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재 결정이 나오게 된다면 그 법을 따르지 않은 조례도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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