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우 전쟁을 지휘하는 국방부 장관에 '경제통'을 앉혔다. 이러한 파격적인 인사에는 러시아를 전시 경제로 전환하려는 의도와 함께 군내 권력 기반이 없는 인물에 군 지휘권을 부여해 푸틴 대통령 본인의 절대 권력을 공고화하려는 목적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경제통으로 통하는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전 제1부총리를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통상 국방부 장관에 군 출신이 아닌 인물들을 심어놓곤 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전 국방부 장관 역시 직업 군인이 아닌 정치인 출신으로, 푸틴 대통령이 거느리는 충성파 중 한명이다.
예상과 달리 러·우 전쟁 초반에 우크라이나를 단번에 무너뜨리지 못한 데다가, 작년 발생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으로 군부 내 쇼이구 전 장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구나 쇼이구 전 장관의 핵심 측근인 티무르 이바노프 전 국방부 차관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금되는 등 부패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군을 대표할 새로운 얼굴이 절실해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는 러·우 전쟁에서 사망한 자국 군인수가 5937명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전쟁으로 러시아군 30만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2022년 9월 동원령으로 고급 인력이 외국으로 대거 이탈하는 등 민심관리 차원에서도 국방부 장관의 교체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러시아 경제를 전시 경제로 완전히 전환하려는 의도도 있다. 벨로우소프는 강한 정부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다. 러·우 전쟁 전 국내총생산(GDP)의 2.6%였던 군사비 지출 비중은 올해 들어 6%를 넘었다. 서방의 각종 경제 제재 속에서도 러시아는 탄약, 탱크 등 군사 무기를 대거 생산한 덕에 고용률과 임금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러시아 경제에서 군사 부문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상당해진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역시 이날 러시아가 군사비가 급증했던 냉전 시기인 1980년대 중반의 소련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로 인해 푸틴 대통령이 경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국방장관으로 물색했다고 설명했다.
저명한 소련 경제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벨로우소프는 1981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사이버네틱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학계에서 경력을 쌓다가 1999년 정부에 합류했다. 2012년에는 경제개발부 장관을 지냈고 2013년부터 2020년까지는 푸틴 대통령의 경제 담당 보좌관으로 일했다. 2020년 러시아 제1부총리로 임명됐다.
벨로우소프가 단 하루도 군에 복무한 적이 없는 기술관료(technocrat)라는 점도 국방부 장관에 오르게 된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벨로우소프가 푸틴이 거느리는 충성파 중의 한 명이면서도, 대통령을 압도할 인물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전쟁 사기를 진작할 새로운 인물일 수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권력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평이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러시아 정치전문가인 콘스탄틴 소닌 교수는 “그(푸틴)는 카리스마가 있거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진 사람들을 중요한 공직에 앉히는 것에 대해 항상 극도로 조심했다"고 짚었다. 이어 “벨로우소프는 장군처럼 군대를 이끄는 척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워커홀릭(일 중독자)이자 기술관료“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벨로우소프의 케인스주의적 성향을 감안할 때 러시아의 국방비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 전 러시아 중앙은행 간부는 "그(벨로우소프)는 경제에서 정부가 먼저고, 그 다음이 기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쇼이구 전 장관은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로 임명될 예정이다. 전임 국가안보회의 서기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의 새 거취는 조만간 발표 예정이다. 러시아 의회는 이번 주 중 푸틴 대통령의 임명안을 승인할 방침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