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의 숨은 구도심, ‘황촌(황오동) 마을’은 작지만 소박한 멋과 맛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경주 황리단길과 보문단지에 가려진 작은 마을 황촌에서 경주의 새로운 매력을 만났다.
1박 2일 경주 여정에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동행했다. ‘6월 여행 가는 달’을 맞아 5월 30일부터 31일까지 떠난 ‘일상이 여행이 되는 마을, 경주 황촌 체류 여행’, 그 여정을 담아봤다.
◆ 8000원으로 넉넉하게 즐긴 ‘경주의 맛’···디저트는 빵빵하게
금강산도 식후경.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가장 먼저 ‘성동시장’을 찾았다. 경주에선 제사상에 올린다는 귀한 음식 ‘피문어’를 곁들인 한식 뷔페를 먹기로 한다. 시장 곳곳에 거대한 문어들이 매달려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시장 구석으로 들어서자 수십 가지 반찬이 쌓여 있는 한식 뷔페가 등장한다. 청국장과 보리밥, 국, 한식 뷔페까지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데, 가격은 1인당 8000원에 불과하다.
10년째 한식 뷔페를 운영 중이라는 이태정 양포문어식당 사장(47)은 피문어 장사를 하다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먹고 갈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 이곳에 식당을 내게 됐다고 한다. 식당 인근에서는 남편이 문어 식당을 운영 중이다. 동해안에서 잡아 갓 삶아 내어주는 문어가 별미다.
배를 든든하게 채웠지만 디저트를 지나칠 수 없다. 경주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경주빵’ ‘황남빵’이라고 불리는 팥빵을 먹기로 한다.
80년 동안 4대째 빵을 만들고 있는 ‘최영화빵’은 경주 사람들이 뽑은 으뜸 팥빵이다. 작은 가게 앞에서부터 고소한 빵 냄새가 솔솔 퍼진다. 직원들은 수작업으로 빵을 만들고 타이머도 없는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기를 반복한다. 정성이 깃든 빵은 너무 달지 않으면서 팥과 버터 풍미가 조화롭다. 고(故) 최영화 옹이 1937년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단팥 소를 넣은 화과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 빵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게 됐다고.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을 품은 ‘황남빵’도 있다. 최영화빵이 고소한 버터 풍미를 낸다면 황남빵은 얇고 쫄깃한 피 안에 더 달달한 팥소를 품고 있다. 경주를 돌아다니면서 취향대로 하나씩 맛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경주에서 생산되는 보리로 만든 ‘찰보리빵’도 이곳에 오면 꼭 맛봐야 한다. 찰보리빵을 최초 개발한 집, 찰보리빵 원조 격인 ‘단석가’에서 맛본 찰보리빵은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과 보리의 풍미가 일품이다. 너무 달지 않은 팥소가 담긴 찰보리빵에 시원한 커피까지 곁들이면 남부럽지 않은 디저트가 완성된다.
◆ 경주에서 나온 한라봉 ‘신라봉’으로 만든 막걸리 마셔볼까
‘신라봉 막걸리’와 ‘체리 막걸리’ 등 막걸리를 만드는 장인도 경주에 있다. 1999년생 김민영 대표다. 스무 살 때부터 막걸리 매력에 푹 빠졌다는 김 대표는 경주 특산물로 술을 빚는 전통주 양조장 ‘경주식회사’를 운영 중이다.2022년 경주 원도심 황오동에 설립한 경주식회사는 ‘놀라운 술을 빚겠다’는 김민영 대표 양조사의 마음가짐이 담겼다. 한 잔 한 잔에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술을 빚고 싶다는 그는 막걸리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찬찬히 막걸리를 음미한다. 경주식회사에서 지난해 7월 출시한 ‘깁 모어 막걸리’는 체리의 상큼함을 막걸리에 담아냈다. 막걸리 특유의 텁텁함 없이 부드럽고 상큼하다. 올해 3월 출시한 ‘깁 모어 막걸리 신라봉’은 경주 육지에서만 나는 한라봉 과육을 활용해 빚은 스파클링 막걸리다. 톡 쏘는 스파클링과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듯하다.
막걸리 시음 후에는 ‘막걸리 빚기 체험’에 나선다.
김 대표는 막걸리 빚기를 위해 고들고들하게 지은 고두밥을 준비했다. 넓게 펼쳐서 식힌 밥에 누룩을 한 줌씩 넣어 섞는다. 밥과 누룩이 잘 섞이지 않아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그래도 맛있는 막걸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섞는다. 밥과 누룩이 잘 섞이도록 물을 살짝 섞고 고두밥이 나불나불할 때까지 치대다 보면 완성이다. 발효 과정을 거쳐 고두밥과 누룩이 막걸리로 변하는 7일 동안 잘 저어주면 신선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 고즈넉한 멋이 있는 곳 ‘행복황촌 마을호텔’
북적이는 황리단길에서 15분 남짓 떨어진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얀 담장 너머에 황오연가가 아늑한 품으로 사람들을 맞아준다. 100년 역사를 지닌 동백나무가 있는 정원, 그 내부는 일본식 철도관사 주택과 1980년대 한국 주택 모습을 오롯이 품었다. 마당에는 도란도란 둘러앉아 불을 피우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부엌 옆 작은 방엔 오락기가 숨어 있다.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동전을 넣고 오락을 즐긴다. 아늑한 방은 휴식을 취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황오연가를 나와 걷다 ‘황오여관’과 조우한다. 통창으로 된 현관 옆으로는 작지만 부족함 없는 수영장까지 갖췄다. 우드톤 인테리어에 각종 잔들과 식기까지 완벽하다. 거실 소파에 누워 커다란 빔프로젝터로 영화도 보고 다락방에 올라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황오여관 주인 부부는 ‘어린 시절 추억과 꿈에 관한 기억’을 이곳에 담고자 했다. 만화책이 가득한 다락방, 아기자기한 계단들, 마당이 훤히 보이는 거실을 황오여관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황오여관’이라는 이름이 주는 복고풍을 현재 트렌드에 걸맞게 풀었다. 안락함과 고급스러움까지 더해져 지금의 숙소가 됐다.
경주는 2021년부터 도시재생뉴딜사업을 통해 ‘마을부엌’ ‘게스트하우스’ ‘마을호텔’ 등을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옥체험업체 한 곳을 비롯해 8개 사업체가 마을호텔 객실 기능을 하고 있다.
◆ 밤을 만나 반짝이는 명소 ‘동궁과 월지’
저녁 무렵, 경주 동궁과 월지에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동궁과 월지, 더욱 낭만적인 야경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인파다. 관광버스 10여대를 타고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들이 줄지어 들어서며 신나게 재잘댄다.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다. 다른 부속 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
해가 지고 궁에 불이 켜지자 짧은 환호성이 들려온다. 잔잔한 호수와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화려한 조명을 내뿜는 동궁과 월지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놓게 된다.
경주 대표 야경명소로 꼽히는 이곳은 2023년 한국 관광의 별 ‘올해의 관광지’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주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여행 코스다. 날씨까지 좋았던 덕분에 더 선명하게 빛을 내뿜는 월정교 모습까지 담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대릉원 일원에서 힐링 명상 테라피를 즐겼다.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경주두가에서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대릉원을 바라보며 체험하는 요가와 명상이 퍽 이색적이다. 매트에 누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만끽한다. 즉석에서 연주하는 대금 산조까지 들려오니 자연과 하나 되는 기분이 든다. 날씨와 햇살, 바람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지금, 숨을 고르며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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