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심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고위 외교관들의 한국행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앞서 영국·이탈리아·쿠웨이트에 이어 이번엔 쿠바에 주재했던 북한 외교관이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지난해 11월 국내에 들어온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리일규 정무참사(52)는 이날 보도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탈북 사실을 공개했다. 리 참사는 북한과 혈맹 관계인 쿠바에서 두 차례 근무한 인물로, 북한 외무성 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국에도 몸담았던 '남미통'으로 알려졌다. 탈북 전 주쿠바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만큼 한-쿠바 간 수교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업무를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해외 주재 공관에서 외교관들이 탈북하는 사례는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리 참사는 김정은 체제 이후 국내 입국이 확인된 네 번째 북한 외교관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태 전 의원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2인자'에 해당하는 공사로 근무했으며, 2016년 8월 탈북을 감행했다. 한국행을 선택한 탈북 외교관 중에선 현재까지 최고위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도 임지에서 잠적한 뒤 2019년 7월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역시 가족과 함께 탈북해 같은 해 9월 한국 땅을 밟았다. 늘어나는 고위 외교관들의 탈북 사례는 현 김정은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엘리트 계층이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한편, 태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의 동료였던,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였던 리일규 참사가 한국 사회에 드디어 커밍 아웃(coming out) 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태 전 의원은 리 참사에 대해 "북한 외무성에서 김정일, 김정은도 알아주는 쿠바 전문가였다"며 "(2013년) 파나마에 억류됐던 북한 선박 청천강호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 표창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리일규 참사가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한국과 쿠바 사이의 수교 저지 활동이었다"며 "평양의 지시를 집행해 보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쿠바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북한 외교관 출신들이 모두 힘을 합쳐 통일운동을 열심히 해 자기 자식들을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 보려는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의 꿈을 꼭 실현해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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