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여름휴가 기간 저는 할 일 없이 며칠째 방구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재충전한다는 명목입니다. 휴대전화를 과충전하면 성능이 저하되듯 몸이 배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중 한 곳이 서울 마포구에 있는 홍익대 인근입니다. 홍대는 언제 가도 사람이 많습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한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저도 줄을 섰습니다. 그렇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입장하게 됐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여기 또 다른 올림픽이 있습니다. SK텔레콤의 플래그십 매장 '홍대 T팩토리'에서 열린 '호록(HOROK)! 술림픽(술+올림픽)'입니다.
술림픽은 7~8월에만 열립니다. 다양한 술을 시음하고 각 주종에 금·은·동 순위를 매기는 행사입니다. 술이 마치 올림픽 선수를 연상케 합니다. 14개국 44종의 주류 선수들이 8개의 조를 이뤄 참가합니다. △소주 △맥주 △막걸리 △하이볼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스피릿 △무알코올 음료 총 8종입니다.
우선 술을 즐기는 행사인 만큼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입장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패스(PASS) 등을 통한 본인 인증과 T팩토리 공식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야 합니다. 이후 안내 직원이 신분증을 확인합니다.
그렇게 입장하면 술림픽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긴 팸플릿과 시음 티켓을 하나 받습니다. 시음 티켓을 들고 원하는 주종이 있는 부스에 방문하면 샘플러 잔·박스 1세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샘플러 박스엔 30㎖ 용량의 컵 4잔에 꽂혀 있습니다. 잔에 담긴 술을 시음하면 됩니다.
시음 후 각 술에 금·은·동 순위를 매기면 주종에 맞는 기념품(지비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팸플릿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해 술림픽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됩니다. 다른 방문객들이 매긴 등수를 맞히면 추가 굿즈도 받을 수 있습니다. 추가 굿즈로는 우버택시 쿠폰과 맥주잔 등이 있습니다.
저는 홀로 입장했지만 행사장엔 연인·친구들과 함께 온 방문객이 많았습니다.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데이트코스로 여러 차례 소개가 됐습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김지혜씨는 "여러 팝업 행사를 데이트코스로 가곤 하는데, 여기는 올림픽이 주제여서 흥미롭다"며 "다양한 술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방문한 이지훈씨는 "평소 소주 아니면 맥주였는데 여러 술을 시음해 보면서 '화이트와인'에 관심이 갔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확 트인 전시장에서 홀로 술을 시음하는 게 마치 소믈리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MBTI가 'I'로 시작하는지라 이내 어디론가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곳이 있습니다. 계단을 반 칸만 올라가면 됩니다. 팩토리 가든입니다. '도심 속의 작은 정원'을 표방하는 팩토리 가든은 각종 나무와 식물들이 있어 평온한 분위기입니다. 저는 주변 의자에 앉아 팸플릿 뒤에 있는 십자말풀이를 하며 시음을 이어갔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술을 마신 만큼 두뇌 회전도 느려진 것입니다. 문득 'GPT-4o(포오)에 십자말풀이를 부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전에 오픈AI의 GPT-4o 활용법에 관해서 기사도 썼으니까요. (참고: [박상현의 Tech·Knowledge] IT팀 막내기자 'GPT-4o' 사용해보니)
아쉽게도 GPT-4o는 십자말풀이에 실패했습니다. 가로 첫번째 질문은 '2024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이 열린 곳'이었는데 GPT-4o는 '스타드 드 프랑스'라고 답했습니다. 오답입니다. 개막식은 에펠탑 맞은편인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스타드 드 프랑스는 폐막식이 열린 경기장 이름입니다.
여름이어서 술기운이 꽤나 빠르게 올라왔습니다. 재충전하러 귀가해야겠습니다. 남은 술과 샘플러 컵은 버리지만 샘플러 박스는 재활용됩니다.
오후 4시와 오후 7시에 '쏘믈리에 콘테스트'가 열리지만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쏘믈리에 콘테스트는 '참이슬' '처음처럼' 등 국내 소주 8종 가운데 네 가지를 시음하고 해당 브랜드를 맞추는 이벤트입니다. 모두 맞히면 '쏘믈리에 인증서'와 '메달', '배달의민족 1만원 쿠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인 T팩토리에는 술림픽 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유명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을 확인하는 '필모톡'과 소규모 콘서트 '덕콘'이 매달 진행됩니다. 젊은 세대를 사로잡겠다는 전략입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