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아이들에게 좋은 경험 주고파"
"엄마가 오자고 해서 왔는데 TV에서만 보던 곳이 눈앞에 있어서 새로웠어요."
아주경제신문이 주최한 '2024 청와대·서울 5대 궁궐 트레킹'이 지난 19일 열린 가운데 청와대 본관에서 만난 한은솔양(11)은 이렇게 말했다. 3회째를 맞은 트레킹 행사는 가족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청와대와 5대 궁궐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는 행사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딸·조카와 함께 온 이정선씨는 "서울에 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궁궐과 청와대를 오는 게 쉽지 않은데 마침 기회가 있어서 아침부터 오게 됐다"며 "청와대 개방 직후에는 예약하기가 어려워서 오지 못했는데 아이들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천천히 완주할 계획"이라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행사 시작 전인 오전 8시께부터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모여 몸을 풀었다. 오전 8시 30분경 이연서양(14)과 이재학군(10)은 주최 측이 제공한 분홍색 모자를 쓰고 나란히 준비 운동 중이었다. 이현규씨는 "아내가 인터넷에서 트레킹 행사를 발견하고 신청해서 오게 됐다. 완주보다는 고궁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출발지에 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고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했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참가자들은 9시께 궁궐 트레킹 행사 시작 소리에 맞춰 의정부지에서 광화문 월대를 지나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으로 들어섰다.
연못 위 경복궁 경회루에 머무는 발길···"그림처럼 아름다워"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연못 위에 자리한 경복궁 경회루는 참가자들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문 곳 중 하나다. 경복궁으로 MT를 왔다는 중국인 유학생 유금호씨(22)는 “경복궁이 인상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경회루와 가을 하늘이 그림처럼 예뻤다”고 감탄했다.
이번 트레킹 행사를 MT 장소로 정한 건 곡효여 국민대 중국학부 부교수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참여 가능한 한·중 제자들을 모았고, 제자들 외에 주변 지인에게도 행사 소식을 알려 5~6명이 쿵푸팬더라는 한 팀을 만들었다. 곡효여 부교수는 “여러 번 경복궁에 와봤는데 10월 가을에 이런 경치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며 “또 경복궁에 들르면 경회루까지만 보고 나갔는데 트레킹 코스가 경회루 뒤 청와대까지 이어져서 색다른 곳을 알게 돼 좋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경복궁을 둘러본 참가자들은 하나둘 신무문을 지나 청와대로 이동했다. 청와대에 들어선 참가자들은 본관 앞 넓게 펼쳐진 대정원 앞 ‘청와대 국민의 품으로’라고 적힌 구조물 앞에서 함께 온 가족·친구·연인과 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기록했다.
대정원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선 고등학교 때부터 50년 지기라는 김용대씨(67)와 김오현씨(67)가 정답게 걷고 있었다. 김오현씨는 “사실 청와대보다 경복궁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게 더 좋았다”며 “선조들의 지혜가 서려 있는 곳곳을 둘러봤다”고 말했다. 김용대씨는 “젊었을 때 일을 하면서 청와대에 많이 드나들었다”며 옛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조깅을 했다는 녹지원과 상춘재 정원을 둘러보려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나온 인파는 이제 막 단풍이 들고 있는 삼청로 가로수를 따라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으로 향했다. 적잖은 참가자들은 여느 궁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창덕궁을 가장 보고싶은 궁으로 꼽았다. 방학기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미국 출신 대학생 제니퍼씨(22)는 “창덕궁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갈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었다는 백대선씨(34)와 이세례씨(34)는 이번엔 광화문과 경복궁을 지나 창덕궁까지 걸으며 우리 역사의 숨결을 느꼈다. 이세례씨는 “서울에 살면서도 창덕궁을 이번 기회에 처음 와봤다”고 말했다. 창덕궁 낙선재를 둘러보던 미국인 왕상관씨(27)는 “날씨도 좋고 다양한 경치도 봐서 너무 좋다”며 “돈화문부터 창덕궁까지 올라온 길이 예뻐 사진도 찍고 경복궁보다 훨씬 커서 둘러볼 곳이 많았다”며 웃음을 지었다.
고즈넉한 경희궁···덕수궁 돌담길엔 가을 정취 한가득
창덕궁과 형제 궁궐이라 불렸던 조선의 대표 별궁 창경궁에도 참가자들 발길이 닿았다. 작년에도 트레킹 행사에 참가했다는 박석곤씨(59)는 “집이 대구인데 지난해 기억이 너무 좋고 무료여서 올해도 아내와 같이 왔다”며 “개인적으로 창경궁이 사람 냄새가 더 난다고 생각해 제일 좋다”고 했다. 충남 홍성군에서 왔다는 최연숙씨(63)는 “경복궁은 크고 웅장했는데 창경궁은 아담한 느낌”이라며 “궁궐 투어 기회가 너무 좋고, 내년에도 하면 또 참가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계절을 바꿔서 벚꽃 피는 봄에도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희궁 흥화문 앞에서 분홍색 모자를 쓴 중국인 유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희궁은 큰 길 앞에서 위용을 뽐내는 화려한 경복궁이나 덕수궁과 달리 골목에 숨겨져 있어 고즈넉한 매력을 자랑한다. 30대 일군씨는 "궁궐마다 특색이 있어서 좋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20대 루나씨는 "작년에 흰색 모자도 받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서 올해 친구들을 초대했다"며 "분홍색 모자가 예뻐서 더욱 좋다"며 모자를 들어보였다.
경희궁에서 은행잎이 떨어진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마지막 코스인 덕수궁이 보인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후 정궁으로 쓰이다가 대한제국 때는 황궁이 된 후 고종이 기거하는 등 한국사 격랑의 시기마다 중심에 섰던 곳이다. 마침 대한문 앞에서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펼쳐져 참가자들은 걸음을 멈춰 행사를 관람했다.
유모차를 끌고온 젊은 부부, 초등학생 3명이 노는 사진을 찍어주는 30대 여성, 중년 외국인 무리,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손주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분홍색 모자를 쓰고 대한문 앞에 모여들었다. 김미라씨(57)는 "부부 동반으로 4명에서 같이 왔는데 가을 초입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걷기에 딱 좋은 날씨"라며 "덕수궁까지 걸으니까 좀 힘들기도 하지만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많이 보여서 보기 좋다"고 했다.
어떤 참가자들은 덕수궁부터 역코스로 즐기기도 했다. 수도권 만보 걷는 모임(만수레)에서 온 8명 중 한 명은 "덕수궁 다음 코스로 경희궁에 간다"며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돌아다니는 게 오랜만이라 좋았다. 고궁의 문화적 가치를 체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포에서 온 육모씨(73)는 스탬프 5개를 모두 받고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중간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완주했다"며 "경관이 아름답고 건강에 좋다는 느낌에 걸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의정부지가 뭔지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는데 다음에도 이곳에 모여서 트레킹 행사에 참여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러시아 모녀·중국인 유학생···"내년에도 참가할 것"
회를 거듭하면서 외국인 참가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러시아에서 온 아델씨(24)와 일리나씨(51) 모녀는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아델씨는 "엄마가 한국에서 일해서 여행을 왔다. 한국은 4번째 방문인데 특별한 경험을 찾다가 오게 됐다"며 "경복궁은 온 적이 있지만 청와대는 방문한 적이 없어서 기대했다"고 말했다. 한국 거주 1년 차인 러시아인 나탈리씨(42)도 "궁궐이 매우 예쁘고,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중국 상하이 출신인 예효서씨(25)는 친구 방가허씨(25)를 데리고 왔다. 예씨는 "역사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며 "평소에 걷는 것을 좋아해 궁궐도 관광할 겸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중국인 이환신씨(37)는 "재작년부터 참가했다"며 "5대 궁궐 보면 한국 역사가 가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온 세르게이씨(60)는 "우리 부부가 이 행사에 참가하는 게 두 번째"라며 "처음에는 러시아 대사관 초청으로 알게 됐는데 아름다운 공원과 궁전이 걷기에 쾌적하고 사람들도 친절해 올해도 참여하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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