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명태균 입'에 휘둘리는 한국 정치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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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한라대 특임교수
입력 2024-10-2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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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씨와 김건희 여사가 나눈 듯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 [출처=명태균씨 페이스북]


 

명태균씨 소동을 보면서 한국정치가 얼마나 경박한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명씨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치권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공방을 벌인다. 특히 국민의힘은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명씨에게 했다는 ‘오빠’가 친오빠냐 윤석열 대통령이냐를 놓고 싸우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명씨 폭로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우리 정치가 휘말려들어야 하는가? 그 난리를  쳐야 하는가? 

 

명씨가 언론 인터뷰나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폭로한 내용의 핵심은 그가 대선 전 윤 대통령 부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윤 대통령 부부에게 많은 정치적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명씨는 아크로비스타 306호 윤 대통령 자택에 “셀 수 없이 갔다”며 “제가 거기 연결이 된 거는 (2021년) 6월 18일”이라고 했다. 명씨는 “6개월 동안 매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하며 여러 조언을 했어요. 가끔 낮에도 여러 번씩 통화했어요. 스피커폰으로 아침에 전화 오세요. 두 분이 같이 들으시니까.” ‘6개월’이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때인 2021년 6월~11월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명씨 폭로의 핵심 정리해 보니
 

명씨는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에도 조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때 대통령 내외분이 전화가 오셔서 말씀하시길래 오늘 그냥 입당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내외분이 ‘7월 30일’, ‘8월 3일’, ‘8월 6일’, ‘8월 15일’ 말씀을 해서 제가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입당하러) 가셨다”고 했다. 그는 “제가 말해서 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제가 말씀드리고 나서 바로 입당하신 거는 사실”이라고 했다.

 

명씨는 2022년 1월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결별 원인으로 꼽히는 ‘후보는 우리가 해준대로만 연기만 좀 해달라’는 김종인 위원장 발언도 자신이 한 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에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은 제로였으나 제가 얘기한 게 투자자, 배급사가 국민의힘이고, 감독이 누구냐, 김종인이며, 연출은 누구냐 이준석, 시나리오는 내가 짜줄게. 후보는 연기나 잘하시면 됩니다. 이거였다”고 했다.

 

명씨는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갈등을 빚을 때 자신이 나서서 중재를 한 듯한 주장도 했다. 명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카톡메시지 캡처본에 따르면, 명씨는 김 여사에게  “내일 준석이를 만나면 정확한 답이 나올 겁니다, 내일 연락 올리겠습니다”라고 썼다. 이에 김 여사가 “넘 고생 많으세요!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오(요) 제가, 난감 ㅠ”,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사과드릴게요”라고 썼다. 여기서 말하는 ‘오빠’가 김 여사의 친오빠냐 윤 대통령이냐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대통령실이 설전을 벌였다.   

 

명씨는 대선 당시 윤 대통령 부부를 만나 국무총리를 추천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이력서(서류심사)도 자신이 봤다고 했다. 명씨는 인수위(2022년 3월~5월) 때 김 여사가 자기에게 ‘인수위 인사들을 면접봐 달라’고 했다고 했다.  


 김 여사 '철없는' 행위는 개탄스럽지만 
 

명씨의 폭로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풍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폭로가 사실이라면 우선 김건희 여사 처신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 기간 중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김 여사가 명씨를 통해 이 문제에 관여했다는 게 그 하나다. 아무리 대선 후보의 아내로서 남편을 돕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아내가 이처럼 남편 정치 문제에 관여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은 아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인수위 사람들 면접을 봐 달라’고 했다는 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김 여사는 대통령 당선자 부인이지만 사적 신분이다. 인수위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공식 기구이다. 사적 신분의 김 여사가 법적 공식 기구에서 일할 사람들 선발에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지칭하는 듯한 맥락에서 ‘철없이 떠든다’고 했지만 실제 ‘철없는’ 사람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서는 김 여사가 아닌가?

 

그러나 명씨 폭로가 전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김 여사 처신의 ‘철없음’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될 만한 게 뭐가 있는지 의문이다. 명씨가 대선을 전후해 윤 대통령과 자주 연락하며 조언을 했다는 게 문제가 되나? 선거판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명씨도 그런 사람의 하나일 뿐이다. 


국정 개입이나 농단 같은 건  없어
 

 윤 대통령이 명씨 조언의 일부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명씨 외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을 들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문제라고 할 수 있나? 대통령 후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조언을 얼마나 가려들었는지는 후보의 안목이나 신중함의 문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비리나 불법 부당의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를 자주 만나고 조언을 했다는 시점은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입당,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대선 운동 기간이다. 모두가 윤 대통령 취임 이전이다. 정말로 문제가 된다면 명씨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에 개입하거나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불법 부당한 특혜를 줬을  경우이다. 그러나 명씨가 대통령을 팔아 이권에 개입하거나 검은 돈을 받았다는 등의 사실은 밝혀진 게 없다.  대통령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도 없다.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휘둘려 국정을 함부로 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정치는 명씨가 엄청난 비리나 불법, 국정 개입이나 국정 농단을 폭로하기라도 한 듯이 그이 입에 휘둘리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하면 할수록 대통령 부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은 커져가고 정권의 몰락은 앞당겨질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 부부와 명씨 사이에 정권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의혹이 있는데도 숨기고 있다는 투다. 지금까지 드러난 명씨의 폭로 중에 그렇게 의심할  만한 내용이 뭔가? 국민의힘은 정치 브로커의 활동을 막는 ‘명태균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치 브로커의 입을 어떻게 법으로 막을 수 있다는 건가. 

 

 명씨는 “아직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며 “대선 때 내가 한 일을 알면 모두 자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내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검사에게 '(나를 구속하면) 한 달이면 (윤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 감당되면 하라'고 말할 것”이라고도 했다. 자기를 구속하면 윤 대통령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내용보다 더욱 엄청난 내용을 폭로하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온 정치권이 난리
 

만약 명씨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20분의 19’를 전부 폭로하고, 거기에 정말로 윤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윤 대통령에게 엄정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으면 된다. 국민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나오기 전까지는, 더구나 그런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나 정황이 나오기 전까지는 명씨 입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 한 언론 표현대로 “거간꾼인지 협잡꾼인지 ‘듣보잡’ 인물”의 경박스러운 폭로에 휘둘리는 것은 그보다 더 경박스러운 일이다. 

 

명씨가 여론조사를 조작하거나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명씨가 어떤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건 그것대로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명씨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는 것과 명씨 입에 휘둘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10월 16일 실시된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야당 후보를 큰 득표율 차이로  이겼다. 이 두 곳은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텃밭이라고 불린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명씨 소동이 하루도 그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국민들은 명씨 소동이 말 그대로 가십성 소동일 뿐 정부 여당을 심판해야 할 만한 사건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 아니겠는가? 국민이 정치권보다 더 사안의 본질을 바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 부부가 명씨 소동을 계기로 되돌아봐야 할 게 있다. 김 여사의 ‘철없는’ 처신이 갈수록  걱정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다. 김 여사는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 직후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한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57분간 통화했다고 이 인사가 밝혔다. 김 여사는 대선 때는 인터넷 매체 직원과 7시간 45분 동안 통화한 내용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팬클럽에 보내고, 친북 인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런 일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반복되니, 이러다 정말로 무슨 큰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닌가 가슴을 졸이게 하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 부부에게는 '쓴 약' 돼야
 

부인 일에 두루뭉술 넘어가기만 하는 윤 대통령의 엉거주춤한  자세도 되돌아 봐야 할 일이다. 윤 대통령이 그런 자세를 취하니 김 여사가 자기 처신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말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 이전과는 달리 스스로 사람을 가려서 만나고 조언을 구하는 신중함과 지혜를 잃지 않고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지난 4월 윤석열·이재명 회동을 앞두고 윤 대통령을 사적으로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는 사람들이 대통령 말을 미주알고주알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생기면 국민은 윤 대통령이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할 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신중함이나 지혜를 잃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명태균 소동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입에 쓴 약'이 돼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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