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60·70대 등 지식이 완숙된 노동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년을 없애고 과감하게 ‘나이를 따지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
오명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은 29일 국가원로회의 창립 33주년을 맞아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최근 불붙은 법적 노인 연령 75세 상향, 정년 연장 논의 등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개인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이 행복해지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정년을 없애는 과정이 복잡하겠지만 시간을 정해두고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면 30년 안에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 상임의장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서울대 전자공학과,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캠퍼스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시작으로 체신부,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장관 등을 역임했고 언론사 회장, 대학 총장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초석을 놓은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로 명성이 자자하다.
지난 5월 오 상임의장은 국가원로회의 수장 자리에 올랐다. 국가원로회의는 국가 발전을 이끌었던 원로들이 모여 한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방향을 연구하고 제시하는 조직이다. 오 상임의장이 사령탑으로 있는 국가원로회의는 33인 공동의장 체제로 재탄생하고 국가 발전을 견인할 준비를 마쳤다. 오 상임의장은 “원로들의 경륜과 지혜를 살려 국가에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내놓는 역할을 하려 한다”며 “10년, 20년, 30년 또 100년 후에 우리나라 모습을 그리고 그 그림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특히 오 상임의장은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원로들이 앞장서 AI 혁명을 주도해야 한다”며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대전환기에 바람직한 미래를 제안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초고령·저출생, 이공계 쏠림 현상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오 상임의장의 견해를 들어봤다. 다음은 오 상임의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새 의장이 그리는 국가원로회의 모습은.
“상임의장을 맡고는 33인 공동의장 체제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33인 공동의장 체제에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원로들이 모였다. 국민들이 존경할 수 있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런 모습을 갖췄다. 또 우리나라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원지원(元智院·원로들의 지혜를 모은 연구원)이라는 싱크탱크를 만들었다. 원지원은 말 그대로 원로들의 지혜를 모은 연구원이다. 우리나라 장차관, 연구원장, 대학 총장 등 국정 참여 경험이 있는 분들이 함께한다. 여기에 젊은 박사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하면서 100여 명이 모인 연구원이 됐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큰 규모의 연구원은 없었을 거다. 국가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특별한 시도로 만든 연구원인 만큼 우리나라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역할을 할 거라고 믿는다. 특히 원지원은 인공지능(AI) 혁명을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AI 혁명에서 자칫하면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세대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혁명의 주도 세력이 되자고 했다.”
-IT 강국을 만드는 초석을 다진 주역으로서 향후 도래할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전략적 제언이 있다면.
“기술적인 부분은 전문가가 맡더라도 IT 혁명을 일군 경험을 지닌 원로들이 수십 년 뒤에 AI 혁명을 통해 구현될 국가를 설계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의료를 한 예로 들어 보자. 현재 우리나라 노인 70~80%가 요양원에서 숨진다. 반면 의료 복지국가는 80%가 자택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의료 혜택을 집에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려면 패밀리 닥터(가정의)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등 병의 가족 내력을 다 아는 가정의가 있어 정확히 진단하고 집에서도 진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 진단, 처방 등을 AI가 해줌으로써 의사의 손을 덜어주게 되면 의사 한 명당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가 늘어나고 한국에도 패밀리 닥터 제도가 정착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자택에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확산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빨리 이 같은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최근 이중근 대한노인회 회장이 노인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상향하자는 제안을 했다. 초고령화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지금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노인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자’ 또는 ’정년을 5년, 10년 연장하자’는 논의에서 벗어나 아예 나이를 묻지 말자고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나이가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정년도 없고 이력서에 나이를 쓰지 않도록 돼 있다. 일하는 방법도 한 회사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고 여러 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회사도 고용을 해서 사무실에 앉혀두는 것이 아니라 인력이 많이 필요할 때 그때그때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 1명대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저출생, 축소사회 위기에서 합계출산율 1명을 만들 해법은.
“저출생은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저출생은 국민 스트레스에서 온다. 국민 스트레스가 많은 지점이 바로 대학 입시다. 그래서 대학 입시를 없애야 한다. 4년제 대학을 없애고 평생 교육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럼 누구든지 원하는 대학,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생긴다. 전공별 칸막이도 없애야 한다. 현장에서는 전공 이외에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예컨대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과생이 삼성전자에 취직했다고 했을 때 금속, 기계공학 내용까지 알아야 하고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앞으로 AI 시대가 현재의 직업들도 10~30년 사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전공을 나눠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공계 기피, 의대 쏠림 현상으로 현장에서는 일자리 부조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첨단산업 육성 등 미래 먹거리 주도권 싸움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방안은.
“이공계 교육이 너무 어려운 게 문제다. 쉽게 가르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과 지식도 대학 졸업 후 물어보면 90%가 대답을 못할 정도다. 그만큼 과학 교육이 잘못돼 있다. 생활에 맞게 쉽게 가르쳐야 하고 대신 공부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 자연스럽게 이공계를 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갖춰 나가야 하고, 이런 건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야 정쟁이 극심하고 대통령실마저 각종 논란에 휩싸여 민생 회복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양극으로 갈라선 정치에 대한 생각은.
“근래 여야 정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AI 시대를 빨리 앞당기는 게 급선무다. AI가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걸러내고 일을 맡길 때도 자리에 맞는 인물인지를 판가름해 줄 거다. 아울러 현 의회 제도는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정보 혁명을 맞이하면서 이 제도가 바뀌어야 했는데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제 AI 시대가 오면 의회 제도도 맞춰 변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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