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개발은 1등, 금융 지원은 꼴등"....갈길 먼 K-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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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4-11-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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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방산 미래로, 세계로①] 방산 강국은 '무기+방산 패키지딜'

  • 한국 금융 지원책은 경쟁국에 밀려...초장기, 초저리 방산 파이낸싱 도입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산 전투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 싣는 순서
[K-방산 미래로, 세계로①]갈길 먼 K-방산 금융지원
[K-방산 미래로, 세계로②]상위 1%가 전체 매출 독식
[K-방산 미래로, 세계로③]납기 사이클 단축 방안은?
[K-방산 미래로, 세계로④]핵심 소재 대부분은 중국산
[K-방산 미래로, 세계로⑤]커지는 방산 ESG 리스크


"방산 수출 4대 강국을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금융 제도를 갖춰야죠. 방산 수출과 금융 지원은 '원스톱 패키지딜'입니다. 지금 이대로면 'K-방산'의 경쟁력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A업체 관계자)
 
K-방산의 가장 큰 경쟁력은 양질의 무기를 적기((適期)에 공급할 수 있는 '속도전'에 강하다는 점이다. 속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핵심은 빠른 무기 생산 능력과 정부의 금융지원이다. 방산업계는 "질 좋은 무기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 못지않게 안보에 위협을 느끼는 국가가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원하는 무기를 신속하게 공급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무기 경쟁력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겨루면서 수출 금융은 아직도 군사 원조를 받던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있는 게 한국 방위 산업의 현 주소"라고 지적했다.
 
3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12월과 올 4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맺은 K-9 자주포 152문과 천무 72대를 구매하기로 한 계약과 관련해 한국 정책 금융이 아닌 유럽계 글로벌 은행과 자금 마련에 관한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규모는 K-9 자주포 152문이 3조2000억원, 천무 72대가 2조2000억원대로, 이 계약은 이달까지 양국 당국 간 별도의 금융계약이 체결돼야 효력이 발생하지만 불발됐다.
 
방산 계약은 정부 간 계약 성격이 강하고 수출 금액도 커서 보통 수출 국가에서 저리의 정책 금융, 보증 보험을 지원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다. 폴란드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한국 방산업체로부터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천무 288문 등을 도입하겠는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의 금융지원을 요청했다. 실제 그해 1차 계약(전차 180대, K9 212문, 천무 218대) 때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계약액의 80%가량인 100억달러 규모의 대출과 보증을 지원했다.

양국 정부는 최근까지도 협상을 이어갔지만 2022년 체결한 폴란드와의 1차 계약에서 한국의 정책 금융 보증 한도가 소진돼 2차 계약에서는 추가 보증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와 국내 방산 업계는 5대 시중은행을 동원한 민간 '신디케이트론'을 제안했지만 폴란드는 시중은행보다 조달금리가 낮은 정부의 정책금융을 강하게 선호했다. 업계 관계자는 "충분히 예측됐던 문제였고, 대처할 시간이 1년이나 있었는데도 실패한 것"이라면서 "한국의 제도적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폴란드가 무기 계약을 철회하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향후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수출 금융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게 업계 요구다. 실제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한국과 체결한 무기 계약에서 제공받기로 한 융자금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서 "한국과의 방산 계약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변경이 없길 바란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이번에는 러-우 전쟁에 따른 폴란드 지정학적 위기의 시급성으로 한국과의 계약을 번복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계약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최근 수출입은행법 개정을 통해 자본금 한도가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었지만 수출을 지원하기엔 역부족이다. 여기에 특정 대출자에게 자기자본(25조원)의 40%(10조원) 이상을 대출할 수 없도록 한 수은법 규정 등도 걸림돌이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1년에 2조씩 5년간 자본금 한도를 늘린다는 계산인데 무기 수출은 한 번 할 때마다 10조씩 늘어난다"면서 "글로벌 방산수출 4대 강국을 꿈꾼다면서 너무 안일한 대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산 수출액이 수천억원에 머물던 과거와 달리 수십조원 규모로 커진 만큼 수출 금융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은 자본 확충 외에도 민간 신디케이트론 확보, 정부의 금리 보전 제도 등 보다 정교한 금융 제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은 해외군사재정지원(FMF) 제도를 통해 무기 구매국에 원조, 차관 형식으로 수출금융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방산 등 국가전략사업에 OECD 신용등급과는 별도의 무기수출금융을, 스웨덴은 정부 수출보증위원회에서 방산 수출을 전략적으로 지원한다. 반면 한국은 무기 경쟁력을 갖추고도 수출금융지원책 경쟁에 밀려 2017년에는 태국 잠수함 사업(중국)과 말레이시아 다연장 로켓 사업(중국)에, 2020년에는 필리핀 잠수함 사업(프랑스) 수주에 실패했다.
 
국내 방산 전문가인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기 거래는 규모가 크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단일 무기체계라고 해도 수출 금액이 조 단위를 넘어선다"면서 "정부가 국가 방위를 위해 사용하는 공공재 성격이 강한 만큼 수출 때 정책금융 패키지를 따로 떨어 뜨려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가령 1조 수출액으로 가정해도 이자가 1%면 금융비용만으로도 100억 이상 차이가 난다"면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한국과 무기체계를 경쟁하는 중진국들까지 수출금융 패키지를 묶어 지원하는 만큼 한국도 금융지원을 무기 경쟁력만큼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방산 강국의 수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방산 수출 금융지원도 대규모, 패키지화가 강화되는 만큼 한국도 대규모 수주를 뒷받침할 금융 체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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