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중후장대(철강·화학·자동차·중공업) 업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국내 조선·화학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 해군력을 경계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 사업 강화라는 정책 목표를 내걸고 있는 만큼 수주 확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철강업계는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관세 폭탄을 우려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기술력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향후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발언을 했다.
국내 조선업계 수혜 영역으로 MRO(정비·수리·운영) 사업이 거론된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오는 2027년까지 미국 해군을 전력 구조를 개편할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선박 수출뿐 아니라 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도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계기로 미 해군 MRO 시장 진출에 공을 들여온 국내 조선 업계가 수주 확대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함정의 건조보다 퇴역이 더 빠른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중국의 군사력 증강 등 대외 요인으로 기존 함정의 MRO 수요는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올해 577억6000만달러(약 78조원)에서 2029년 636억2000만달러(약 88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이 가운데 미국 시장의 규모만 연간 약 20조원을 차지한다.
이에 미국이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른 미국 내 조선소의 한계를 동맹국인 한국을 통해 해결할 것이란 추측이 우세하다.
현재 수혜기업으로 거론되는 곳은 국내 조선사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이 있다. 양사는 이미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MSRA(함정 정비 협약)를 체결한 상태다. MSRA는 MRO 사업을 위해 조선사가 미국 정부와 맺는 협약으로 높은 유지·보수 품질과 기술을 갖춘 조선업체와 맺는 인증 협약이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총 1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필라델피아주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며 글로벌 MRO 전초기지를 구축했고, HD현대중공업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MRO 사업 입찰에 뛰어들 계획이다.
LNG운반선, 유조선 등 상선 분야에도 긍정적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화석 에너지 강화를 강조하며 원유·천연가스(LNG) 운송량 증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LNG 운반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 중이다. 올해 1분기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 29척을 한국이 전량 수주하며 압도적인 경쟁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철강업계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보호무역 강화로 인한 관세 폭탄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는 2018년 수입 철강재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한 전례가 있어서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당시 평균 3%대인 모든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로 높이겠다며 ‘보편적 관세’를 공약했다. 보편적 관세가 부과하면 한국 주요 수출 품목 7위권에 이르는 철강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내 철강 업계는 현재도 미국 수출 물량을 제한받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1기 시절 한국 철강업계는 고율 관세를 지급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수출 물량을 줄이는 퀴터제의 적용 대상이 됐다. 그 결과 현재 2015~2017년 한국산 철강의 미국 수출량은 연평균 383만t이었지만, 현재 268만t의 철강만 수출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무역장벽 강화로 인한 대미 수출 물량 제한으로 중국 저가 철강의 국내 유입 물량이 더 많아질 수 있단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수출 견제로 중국 업계가 타격을 받으면 국내 기업들이 반사 이익을 얻는 경우가 있지만 철강은 이미 미국 수출 물량을 제한받고 있어 상황이 다르다"며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저가 철강 물량이 국내에 더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철강업계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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