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시계제로' 국제정세 … 尹대통령 외유에서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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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입력 2024-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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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정할 때 이뤄지는 대통령의 외유는 여론으로부터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야당의 비난 공세는 거세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APEC(14~15일, 페루 리마 현지시간) 참석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열린 타이밍을 생각해 보면 윤 대통령의 정상회의 참석은 세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의 최신 동향을 탐색한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세계의 초미의 관심은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트럼프 2.0)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펼칠 새로운 미국의 시대와 글로벌 정치다. 그의 행보를 조심스럽게 관측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서로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 일종의 탐색전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접근을 노리는 중국의 자세가 부각됐다. 대중 관세 인상을 내건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는 2025년 1월 출범한다. 미·중 갈등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주변국과의 관계 안정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먼저 “지난 2년 동안 국제 정세가 많이 변했고, 양국 관계가 전반적으로 발전의 모멘텀을 유지했다”며 “정세가 어떻게 변화를 하든 양국은 수교의 초심을 고수하고, 선린우호의 방향을 지키며, 호혜 상생의 목표를 견지함으로써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가 서로 통하며 경제가 서로 융합된 장점을 잘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류 협력을 심화하고, 양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Strategic Cooperation Partnership)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양국 국민에게 복지를 가져다주고, 지역의 평화, 안정과 발전, 번영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과 그 역할을 함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시진핑 주석이 한동안 잊었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다시 꺼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갓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공세에 자극받은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 등이 활발한 외교를 펼쳤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의 핵심 중 하나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상처받은 나토 국가 등과의 동맹관계 재구축이다. 중국은 이에 대한 외교 전략으로 파트너십 외교를 내세웠다.
중국 외교에 동맹관계라는 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의 동맹관계는 군사력을 우선시하고 블록화를 추진해 중국을 비롯한 동구 국가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국가관계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국제사회가 세계화되고 국가관계가 다양화·복잡화된 오늘날 동맹관계는 냉전시대의 유물과 같은 것으로 현실에 맞는 '신형 외교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중국이 말하는 파트너십 외교다. 그 정의는 ‘서로 상대를 적으로 하지 않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공통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요구해 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경제 관계를 축으로 폭넓은 국가 관계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 보면 다른 형태로 인식된다. 미국은 일본을 비롯해 10개 이상의 국가·지역과 동맹 조약을 맺는 동시에 세계 150여 개국에 미군을 파견·주둔하고 있다. 개혁개방 정책에 성공해 급속히 국력을 키운 중국은 뒤늦게나마 미국 중심의 국제관계로 파고들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중국식 파트너십은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질서를 부정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외교세계를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파트너십 외교를 펼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대상국은 가까운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영국, 프랑스, 독일, EU, 나토, 동남아시아국가들, 중남미 국가에서부터 아프리카, 중동 국가 등 40곳을 넘는다.
주목할 것은 상대국에 따라서 파트너십에 붙는 형용사가 다르며 확실한 랭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란과 아세안과 같은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은 최상급의 등급이다. 그 아래는 전략 파트너십, 우호적 파트너십, 전통적 협력 파트너십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일본과는 1998년 우호협력 파트너십을 맺었지만 2006년 ‘전략적 호혜관계’라는 표현에 합의한 바 있다. 교섭에 임한 일본 외무성 간부는 “파트너십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중국이 만들고자 하는 질서 속에 들어가는 것 같은 인상이 되기 때문에, 굳이 전혀 다른 개념과 말을 꺼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신형의 대국관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번 APEC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시 주석은 15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공통 이익을 확대하는 ‘전략적 호혜 관계’의 포괄적인 추진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에서의 큰 방향성을 확인했다. 시 주석은 “중·일은 윈윈의 협력을 견지해 글로벌한 자유무역 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중국의 발전은 일본과 세계의 근린 국가들에 기회다. 양국의 인적 교류 등을 깊게 하자”고 촉구했다.

둘째는 미국 정책전문가들의 인식을 파악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번 APEC 행사에 맞춰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15일 도쿄에서 공동주최 심포지엄 '미·일 신정권과 인도태평양의 미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트럼프 차기 대통령의 고립주의 외교에 우려를 표명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아시아 외교를 총괄했던 러셀 전 차관보는 안보 측면에서 러시아와 북한, 중국의 연계가 강화되고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현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미·일 3국의 방어와 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딜(거래)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정책에 대한 우려도 잇따랐다. 존 햄리 CSIS 소장은 트럼프가 주일미군 주둔 비용의 일본 측 부담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 같다.
또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2023년 1월까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일본 등 아시아 담당 대표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비먼은 미디어 인터뷰에서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무역정책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와 무역관계를 재설정할 것 같다. 미국의 관세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비먼은 “미국 국내 정치가 강경 우파와 급진 좌파로 양극화되어 있고, 양 극단은 무역의 폐해에 대해 대체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역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오랫동안 무시되어 온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자유무역에 역행하는 궤도가 “새로운 정상이 됐고, 트럼프 차기 정부에서 그 속도와 강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그는 특히 “중국에 대한 태도가 한층 더 강경해질 것이며 차기 정권은 무역적자를 협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셋째는 트럼프 차기 대통령을 설득하는 지견(知見)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의 워싱턴 주재원으로 대외 로비를 담당했던 한 국제 비즈니스 컨설턴트가 기고한 ‘트럼프 시대’에 대한 제언이 있다.
미국 대통령 임기는 4년이지만, 워싱턴은 2년 주기로 움직인다. 하원이 2년마다 재선거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 초부터 시작되는 트럼프 행정부와 119대 의회가 2026년 가을 중간선거까지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어떤 정책을 실행하고 법안을 통과시킬 것인지, 즉 차기 행정부와 의회의 어젠다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트럼프 시대에는 SNS에서 대통령의 불규칙한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잡음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가끔 중요한 발언이 섞여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는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은 무시하고 SNS를 통해 평이한 말로 국민들에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새 정부에서도 같은 방식을 많이 사용할 것이다. 잡음과 중요한 발언을 구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다음으로 워싱턴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 관계자와의 인맥이다. 새 정부에서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을 조기에 파악해 파이프를 만드는 것이 매우 긴요한 일이다. 또한 새 정권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그 정권의 어젠다를 바탕으로 대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쉬운 말로 스토리텔링화하여 설득방식으로 삼는 것도 유용하다. 어찌 되었든 두 번째 트럼프 시대는 첫 번째보다 더 혼란스럽고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는 것이 좋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신호에서 ‘트럼프의 '세 가지 특성’에 놀아나는 세계 정상들‘이란 특집기사를 냈다. 이 특집에 실린 첫 사례가 흥미롭다.
“2019년 5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당시)이 지바현 모바라 컨트리클럽에서 함께 한 골프는 두 사람이 함께 한 총 5번째 라운드였다.
골프장에서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을 포착한 당시 사진을 보면 두 친한 친구가 봄볕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클럽하우스에서 먹은 점심은 미국산 소고기를 사용한 더블 치즈버거였다. 제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아베 총리는 변덕스러운 트럼프를 능숙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마스터 클래스였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 교훈을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 역시 배우고 있다. 트럼프 정권을 상대하는 데 있어 감정 기복이 심한 트럼프의 성격이 정책적, 경제적 대응과 함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트럼프에 대처하는 전략의 기본 요소는 아첨(Flattery), 산만함(distraction), 골프다. 이 세 가지가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아베의 전략 핵심이었다. 전 세계가 놀라고 동요할 때 아베 총리는 주요국 정상들 중 가장 먼저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의 승리를 축하했다. 이때 금색 골프채를 선물로 들고 갔고, 이후 두 개의 골프채를 추가로 트럼프에게 선물했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일본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피하고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완화시킨 것도 아베 총리가 잘 버틴 결과였다.”
 
외교적 이익을 얻으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트럼프 차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국제 정세 변화에 대비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초당적인 대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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