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어디에?…최재천 교수 "마음 속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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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5-01-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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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평+양심=공정

  • 종종 '양심' 말하는 사회로 되돌려야 

  • "사회 이끄는 이들 읽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양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더클래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양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더클래스]

“‘양심에 털 난 놈’, ‘양심 엿 바꿔 먹은 놈’. 어릴 적엔 양심이란 단어를 일상대화에서 늘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일상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사라졌더군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올해 첫 신간 <양심>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양심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최 교수가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여러 일화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친구들을 제주 바다로 돌려보낸 일, 호주제 폐지에 앞장선 일,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대운하 사업에 반대한 일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얼어 죽을 양심’ 때문에 온갖 탄압을 다 겪어야 했다. 전국 곳곳에서 쉬지 않고 걸려 오는 전화로 들은 쌍욕은 약과였다. 다행히(?) 감옥살이는 피했지만, 계좌 추적, 세무조사, 연구비 박탈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호히 말했다. “양심의 용도 폐기는 불행한 일이다”라고. 
공평+양심=공정
최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양심>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사회가 양심을 다시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왜 사라지고 있을까 고민했다. “언어학자들은 사회에서 언어가 사라지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하더라. 단어의 쓰임새가 아예 없어졌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되는 것이다. 양심을 대체할 단어가 없더라. 억지로 찾아낸 게 ‘쪽팔리다’였다.”
 
최 교수가 양심을 강조하고 나선 데는 '공평+양심=공정'이란 그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던 공식이 자리한다. 양심을 빼고는 공정을 얘기할 수 없는 셈이다.
 
그는 온라인상에 떠도는 ‘야구장을 들여보는 만화’로 이를 설명했다. “키 큰 사람, 중간 키 사람, 키 작은 사람. 세 사람 모두 박스를 받아서 그 위에 올라서면 중간 키 사람은 머리가 담장 위로 올라가서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지만, 키 작은 사람은 여전히 못 본다. 제일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에게 박스를 양보하면 키 작은 사람이 박스 두 개 위에 올라서니, 세 사람 모두 담장 위로 경기를 볼 수 있게 된다. 똑같은 박스를 모두에게 준 건 공평, 제일 작은 사람에게 박스 두 개를 준 건 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가장 키 큰 사람이 박스를 내어주는 ‘적극적인 양보’와 함께 중간 키를 가진 사람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간 키를 가진 이들은 양쪽을 살피면서 마음속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다. 키 큰 사람의 양보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은 중간에 있는 그 사람이다.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뭔가를 공유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불편한 마음이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최재천 교수 사진더클래스
최재천 교수 [사진=더클래스]
 
'양심' 말하는 사회로 되돌려야…"사회 이끄는 이들 읽길"
최 교수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현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와 손을 잡고 내려오던 딸의 손을 떼어낸 뒤 딸의 손을 물티슈로 닦던 한 엄마의 모습을 회상했다. 우리 사회가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는 심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텐데, 아이들이 그런 심성을 표현하려고 하면 ‘공부나 해’라면서 자꾸 괴물을 만드는 게 아닐까. 포유동물로서 갖고 있는 본성을 지켜내게 하는 건 결국은 사회 분위기일 텐데. 양심이란 단어가 사라져가는 이 분위기를 끌고 가면 우리 사회의 삶은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종종 양심을 운운하면서 사는 사회로 되돌려야 하지않을까 해서 이 책을 만들었다.“
 
특히 현 시국에서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이 <양심>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보길 권했다. “정치인들 입에서 양심이란 단어가 튀어나오더라. 흥미롭다. 어떤 분은 제가 생각하는 양심의 기준에 맞춰서 얘기하는 분도 있는 것 같고, 어떤 분은 저런 단어를 언급할 자격이 없어 보이더라. 그러나 긍정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랏일을 책임지는 분들이 제가 생각하는 양심의 기준에 따라서 움직여준다면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 교수는 세상은 다 속일 수 있었어도 딱 한 명은 못 속이는 것, 바로 자기 마음의 양심이라고 했다.

“양심이란 게 참 어려운 거죠. 철저하게 개인 기준에서 양심을 저버려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세상을 다 속였는데 딱 한 명은 못 속여요. 그 한 명이 바로 자신이에요. 자신을 못 속여서 불편해하다가, 올바른 선택, 올바른 행동을 하는거예요. 우리 사회를 이끌고 계신 분들이 <양심>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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