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미국 이민의 역사는 1600년경 최초의 유럽 이민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이민자들은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독일 등 주로 서유럽 국가들 출신이었다. ‘뉴욕(New York)’은 원래 네덜란드 사람들이 개척한 도시였다. 그래서 ‘뉴욕’이라는 이름도 그 출발은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네덜란드 최대의 도시는 ‘암스테르담’이기 때문이고, 이는 그만큼 네덜란드 사람들이 많이 이주했다는 증거이다. 1664년 영국과 네덜란드의 식민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당시 영국 국왕인 찰스 2세의 동생인 York의 이름을 따서 ‘New York’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도 미국 땅은 영국 출신의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에, 북미대륙 동부의 13개 주에서 출발하여 서부와 남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 러시아, 하와이왕국으로부터 전쟁, 외교, 매입, 그리고 합병을 통하여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형성하여 오늘날의 50개 주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 국기인 성조기에 있는 13개의 가로줄은 독립 당시 연방에 가입한 13개 주를, 50개의 별은 현재 미국 주의 개수를 상징한다. 그래서 미국 국기의 이름은 ‘stars and stripes’, ‘별과 줄’이다.
오늘날 켄터키, 테네시, 미시시피, 앨라배마주와 플로리다는 스페인으로부터 획득하였고, 루이지애나주는 프랑스로부터 매입하였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Louisiana purchase’이다. 또한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하여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를 차지하였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 지역들은 과거 종주국의 영향으로 각각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가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는 지역으로 이중언어사회를 이룬다. 특히 미국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Hispanic) 인구는 그 수가 5천만에 이른다. 이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미국인 수의 60%에 이르고, 그 외에 중국어, 한국어, 베트남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된다. 미국의 지명은 3분의 13은 영어, 3분의 1은 스페인어,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인디언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 드라마를 보면, 영어 이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외국어가 바로 스페인어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이민국가로서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으로 가장 다양한 국가이다. 현재 미국민은 대부분 길게는 수백년 전 이민자의 자손이거나, 짧게는 수십년 전, 더 짧게는 며칠 전에 이민을 왔을 수도 있다. 그래서 원주민을 제외한다면, 미국민들은 이민자이거나 이민자의 자손이고, 영국 출신이 아니라면, 별도로 자신의 모국어나 조상의 언어가 있다. 미국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연방정부는 영어가 실질적인 공용어이지만, 연방 차원에서 공식언어를 지정한 적이 없다. 주 정부에서는 주 차원에서 공용어 내지 공식언어를 지정한 바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1일, 영어를 미국의 공용어로 지정하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서명했다. 1776년, 미국이 건국된 이후 249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은 미국 법률 체계에서 행정법(administrative law)의 일부로 간주된다. 그리고 미국법의 위계에 있어 최상위로는 미국 연방헌법(U.S. Constitution)이 존재한다. 모든 법률과 정부 행위는 이 연방헌법에 부합하여야 한다. 차순위는 연방법(federal law) 및 조약(treaties)으로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로서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효력을 가진다. 다음 위계로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및 행정규정(administrative regulation)은 대통령과 행정기관이 발행하는 명령과 규정으로 이번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바로 그 법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 주(州) 법(state law)은 주 차원에서 제정하는 법률로, 연방법과 충돌하지 않는 한 유효하다. 미국은 연방국가이므로 연방법과 주법이 상충하면, 연방법이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지방법령(local ordinance)이 있으며, 시 정부, 카운티(county) 등 지방정부의 조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행정명령은 연방법보다는 하위이며, 헌법과 충돌하면 무효이다. 행정명령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과 의회가 부여한 권한 내에서만 유효하고, 기존 법률의 집행을 위한 도구일 뿐, 독자적인 입법 권한이 없다. 나아가 연방의회(congress)나 연방법원(federal court)이 행정명령을 제한하거나 무효화할 수도 있다.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어를 미국의 공식언어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이 발동되었다.
지금까지 미국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태동과 구성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임에 따라, 역사적 전통을 고려하여 연방정부 차원의 공식언어(official language)를 지정하지 않았으나, 이번의 행정명령은 원활한 의사소통, 국가적 공통 가치 강화 그리고 보다 응집되고 효율적인 사회를 지향하려는 취지를 강조한다.
영어의 공식언어 지정은 미국과 같은 다중언어 국가에 매우 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본다. 첫째, 정치적 영향으로 실질적이든, 상징적이든 공식언어를 지정한다면,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은 강화되고, 반면에 소수언어 사용자들은 소외된다. 소수언어에 대한 정치적 지원이나 지지가 없이는 소수언어 사용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어 정치적 불안정이나 분리주의 운동을 야기할 수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는 단일의 공식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공공서비스를 비롯한 행정 비용을 줄이면서 효율성이 증가할지는 모르겠지만, 경제적 비용, 특히 일반 시민들이 행정수요를 처리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한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다중언어 행정지원이 중단된다면, 이는 고스란히 이민자와 이민자 사회의 부담이 된다. 셋째, 미국의 교육시스템에 영어 교육이 강화될 것이지만, 스페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외국어 사용자들을 위한 이중언어 교육은 축소될 것이다. 따라서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 가정 및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 격차가 확대될 것이다. 넷째, 문화적인 차원에 있어, 미국은 전통적으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기초한 나라이다. 영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주의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본래의 정체성을 흔들고, 이민자 사회 내에서 기타 언어의 사용이 감소하게 되고, 이민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모국어와 전통문화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언어는 그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사용한 슬로건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즉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영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해서 영어를 통해 결집시키고, 사회를 변혁하려는 트럼프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미국은 대표적인 다인종국가로서 흔히들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 ‘샐러드 볼(salad bowl)’, ‘모자이크(mosaic)’로 불려 왔다. 미국 내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가 각각의 개성을 지니면서 세계 제일의 ‘G1(great power 1)’이 되도록 한 바탕에는 미국 사회와 문화의 다양성이 있다. 미국의 다양성이 바로 역동적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 다양성은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향후 영어의 공식언어 지정이 법적 논쟁이나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지, 아니면 미국 사회에 새로운 언어 정책의 기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귀추가 주목된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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