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6년 늦가을 어느 날, 평양 일대가 들썩였다. 10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린 것. 평양 '핫플' 부벽루와 연광정에서의 연회는 물론이고, 대동강 야간 뱃놀이까지 포함한 이 행사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이를 기획한 인물은 평안감사 이희갑(1764~1847), 축제의 주인공은 11년 만에 열린 도과(道科)에서 최고 성적을 거둔 문무과 장원급제자 2명으로 추정된다.
급제자들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금의환향한 개선장군처럼 도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모든 장관을 지켜보던 평안감사 이희갑은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이 몸이 경제도시 평양의 부와 흥을 길이길이 보여주겠다.”
작자 미상의 8폭 병풍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平安監司道科及第者歡迎圖)에는 이름 그대로 도과 급제자들을 위해 벌인 환영 행사의 모습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담겨 있다. 병풍의 폭이 통상 40cm 남짓한 데 비해, 이 작품은 60cm에 달하는 광폭을 자랑한다. 그림에 사용된 천연안료 등 재료는 궁중행사도에 버금가는 최고급이다. 병풍 속 등장인물은 2500~3000명에 달한다. 평안감사와 급제자 일행을 중심으로, 축제의 흥을 돋우는 기생, 구름떼처럼 몰려든 구경꾼들의 모습이 담겼다. 19세기 평양의 번영과 활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세일럼의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이 소장한 이 병풍은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때만 해도 패널 8폭을 임의로 배열해 ‘평양감사환영도’란 이름표를 붙였다. 신임 평안감사의 부임 의례를 그린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다. 각 그림에서 평안감사 주위를 자꾸 맴도는 듯한 정체불명의 남성 2명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후 이 작품이 평안도 출신 도과 급제자들을 위한 축하연을 그린 것이라는 새 해석이 제기됐고, 수수께끼 같던 두 남성을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가 걷혔다. 당시에는 평안감사가 관직에 나갈 자격을 얻게된 급제자들에게 대동강 선유, 즉 뱃놀이를 베풀어주는 관례가 있었다.

평양이 '들썩'…리움이 되살린 그날의 '흥'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내달 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특별전을 열고 도과 급제자를 환영하는 모습이 담긴 유일본,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를 공개한다.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소속 3명(한종철, 남유미, 강규성)은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16개월간 주말도, 밤낮도 없이 연구에 매달렸다. 매일 지켜보고, 병풍의 뒤도 들춰보고, 지금은 갈 수 없는 평양의 위성지도까지 확인한 끝에 그림 8개의 순서를 맞출 수 있었다.
급제자들은 대동강을 건너 평양성에 입성해 대로 행진을 펼친 후 평안감영(지방관청)의 선화당에서 소연회와 본연회를 가진 후 도보로 40분 거리의 부벽루에서 밤을 맞이했다. 평양감사와 급제자 등 귀빈들이 야간 뱃놀이를 즐기는 동안 구경꾼들은 도보로 이동하고, 연광정에서 행사는 마무리됐다.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장은 이러한 ‘대동강 도강-평양성 입성-선화당-부벽루 연회-대동강 선유-연광정 야연’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시·공간상 딱 들어맞는다고 강조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시간적 흐름과 지리적 동선이 들어맞아요. 급제자가 입고 있던 복식의 선후관계, 횃불의 진함과 연함에도 차이가 있죠.”
그는 그림들을 뒤덮고 있던 1만개 이상의 구멍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의 가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구멍은 3개월간 매일 12시간씩 하나하나 전부 메웠다. “그림에 덧댄 종이에 쌀가루가 들어 있었어요. 종이의 은폐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두께감을 살려 발색을 좋게 한 거죠. 쌀가루 때문에 벌레가 꼬여 만개의 구멍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만큼 가치가 높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요.”


"저이가 급제자구만" 구경꾼된듯…따라가는 재미 '쏠쏠'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는 마치 그림 속 구경꾼이 된 듯 환영연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19세기 평양의 모습과 평양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특히 화려한 환영연을 보기 위해 밀집한 구경꾼들의 모습은 요즘 한강 불꽃축제를 직관하기 위해 명당 자리를 사수하는 돗자리 인파와 꽤 닮았다.
성곽을 따라 빽빽하게 줄지어 선 사람들(2폭), 기와지붕 위에까지 올라가서 대로 행진을 구경하는 여성들의 모습(3폭)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축제 구경은 참 치열하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급제자들의 행렬을 보기 위해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온 부모들(1폭)은 "잘 봐라. 너도 열심히 공부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장원 2명이 기녀의 도움을 받아 부시관과 수령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그림(5폭)에서는 참석자들의 표정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다만, 춤추는 기생들을 보고 웃는 것 같기도해, '으뜸은 평양 기생'이란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날의 주인공은 악공의 반주에 맞춰 춤추는 기녀, 학춤과 사자춤, 광대들의 극놀이, 그리고 새까만 밤을 밝힌 뱃놀이가 아니었을까.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관련 심포지엄에서 이 그림의 배경이 1826년 관서도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1826년 도과의 특이한 점은 중앙에서 시관을 파견하는 원칙을 깨고 평안도 도내에서 선발했다는 것”이라며 문과 장원은 강동에 거주하는 55세 김성(1772~)이었으며, 무과 장원은 조효진이었다고 설명했다.
시관을 맡은 평안감사는 1826년 4월 말에 부임해 이듬해 5월까지 재임한 이희갑이었다. 박 교수는 이희갑이 ‘화성원행도병’(華城園幸圖屛)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란 점에 주목했다. ‘화성원행도병’은 1795년 정조가 화성에서 거행한 행사를 담아낸 기록화다. “(이희갑은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의 외척으로, 1795년 화성행사에 참여해서 기념화 제작 양상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병풍의 배경이 1826년 관서별시(도과)라는 확신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희갑은 이러한 경험을 평안감사이자 시관으로서 도내의 큰 경사를 치르는 자신의 이력을 기념하는 데 적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박 교수는 행사가 여러 날 동안 이뤄졌을 것으로 봤다. “하루에 소화하기에는 빠듯한 일정인 점, 선화당을 배경으로 하는 4, 5폭 중 비가 오는 날씨 정황이 표현된 점을 고려하면 여러 날에 걸친 환영 행사의 과정을 순서대로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에 기반한 관청, 서민 일상, 평양 풍속과 풍물에 대한 세부 묘사가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하다. 잎이 다 떨어진 까칠한 겨울나무 위주로 표현한 수지법에도 김홍도 화풍의 영향이 역력하다. 관서도과가 10월에 시행됐으니 늦가을 내지는 초겨울의 계절감이 반영된 듯하다.”
그는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가 “순조 연간 만개한 화원 그림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회화"라고 평했다.
“개인의 치적과 위세를 강조하고, 감사의 선정 아래 도민들은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어요. 도과급제자 환영 행사의 기록화이자, 개인적인 관직 이력의 기념화이며, 19세기 초 평양의 시대상이 온전히 담긴 풍속화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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