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지의 BOKonomics] '임기 마지막해' 맞은 이창용 총재, 중앙은행 독립성 시험대

  • '어두운 터널' 속 금리 인하 압박에도

  • 뼈를 깎는 구조개혁 강조는 계속된다

  • 6월 대선 후 파월처럼 고난 시작되나

  • "중립 유지하되 현실적일 필요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외교정책협회FPA가 수여하는 메달을 받고 만찬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외교정책협회(FPA)가 수여하는 메달을 받고 만찬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년 임기 중 마지막 해를 맞았다. 이 총재의 남은 임기 1년은 험로가 예상된다. 내수·수출 동반 악화로 한국 경제가 '어두운 터널'에 본격 진입해 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진 데다 6월 대통령 선거 이후 정권 교체기를 맞이하며 중앙은행 독립성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이면서다. 안팎으로 고난의 행군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 총재가 어두운 터널 속 등불 역할을 해내며 유종의 미를 거둘지 주목된다.

방미 중인 이 총재는 24일  CNBC와의 미국 현지 인터뷰에서 미국발 관세 전쟁의 한국 영향과 관련해  "한국은 수출 위주의 경제인 만큼 최근 통상 갈등이 확실히 큰 역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관세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 관세로부터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베트남 내 반도체 생산, 멕시코 내 자동차·전자제품 생산, 캐나다 내 한국 배터리 생산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폭과 관련해서는 "통상 갈등이 심해질지 약해질지, 재정정책을 통한 대응도 봐야 하기 때문에 지금 한은 전망을 미리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올해 1분기 우리 경제가 0.2% 역성장하면서 연 0%대 성장률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아 온 건설투자와 민간소비에 더해 이번에는 설비투자와 정부소비, 그나마 내수 위축을 만회했던 수출마저 줄줄이 뒷걸음쳤다.
 

'어두운 터널' 속 금리 인하 압박…뼈를 깎는 구조개혁 강조는 계속된다
아주경제 그래픽팀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이 총재의 우려대로 같은 날 한은은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역성장(-0.24%)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분기 -0.2%, 3분기 0.1%, 4분기 0.1% 이후 올해 1분기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네 분기 연속 0.1% 이하 성장을 거듭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때도 없던 일이다.

심지어 1분기 한국 경제 성적표는 미국의 관세 조치 영향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전망 여건이 더 악화할 것이란 의미다. 1분기 수출 부진이 글로벌 경기 둔화와 제조업 부진으로 인한 전반적 수요 감소 때문이었다면 2분기부터는 관세 영향이 본격적으로 성장률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알루미늄 등 3월부터 부과된 관세의 영향이 2~3개월 시차를 두고 2분기에 나타나게 된다. 이달 1~20일 대미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3% 감소했다.


내수 부양을 위한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기존 연 3.50%에서 0.25포인트 인하한 이후 올해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0.75%포인트를 내렸는데 내수와 수출 동반 악화일로 상황 속에선 역부족이란 인식이 짙어졌다. 그러나 한은의 금리 인하 여력은 많지 않다. 시장에서는 최종 금리가 2.0% 밑으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과 고환율, 늘어나는 가계부채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은에서 금리를 내리는 것만으로 내수가 회복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고령화와 가계부채로 중산층 소비 여력이 빠른 속도로 줄고 경쟁 심화로 자영업과 소상공인의 실질 소득도 감소하고 있어서다. 내수가 과거처럼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 경쟁력이 후퇴하고 있는 것도 구조적 문제점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10대 수출품목 중 8개가 20년째 그대로다.

이 총재가 오지라퍼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이유다. 이 총재는 2년 연속 1%대 성장에 대해 "신산업도, 구조조정도 없는 우리 경제의 실력"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취임 이후 통화정책과 물가 관리라는 전통적인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현안에 대한 국가 구조개혁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올해도 구조개혁 시리즈를 어김없이 준비하고 있다. 이달 정년연장 대신 퇴직 후 재고용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년연장 이슈를 시작으로 다음 달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노인빈곤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임기 마지막 해 파월처럼 고난 시작되나…새 정부 한은 통제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향해 연일 사퇴 압박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백악관과 연준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날 선 비판에도 파월 의장이 아랑곳하지 않자 분노에 가득 찬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의 해고는 빠를수록 좋다"는 발언도 쏟아냈다. 주변의 만류로 "해고 생각은 없다"고 물러서긴 했지만 시장의 관심은 내년 5월까지인 파월 의장의 임기 유지 여부에 쏠렸다. 변덕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 패턴을 고려하면 하루아침에 해임에 나설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기 마지막 해 파월 행보를 보며 한은 안팎으로는 6월 조기 대선 이후 한은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경제가 올해 1% 성장률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새 정부는 경기 부양에 중심을 두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앙은행 독립성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더군다나 이 총재는 그동안 한국 경제에 해가 된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작심비판을 이어왔기에 정치권과 갈등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구조개혁을 위해 논쟁적인 보고서를 만들어 화제를 일으켰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엔 여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장률이 0.2%포인트 하방 압력을 받았다"며 20조원의 추경 필요성을 주장했다. 야권이 반대했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둔하기도 했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밀었던 전국민 25만원 지원에 관해선 "맞춤형 타깃 지원이 바람직하다"며 작심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선출직 출마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이 수차례 날아들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이 총재는 향후에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 정치적 압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중앙은행 총재로서 필요한 쓴소리는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이 총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외교정책협회(FPA)가 수여하는 메달을 받고 만찬사를 통해 추경을 언급한 이유를 밝히며 "시간이 제 결정의 옳고 그름을 평가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중앙은행가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만 케인스가 그의 스승 마셜을 가리켜 말했듯이 경제학자는 때로는 정치인만큼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최근의 정치적 난관들 속에서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것뿐 아니라 정치로부터도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은은 민감한 시기에도 계엄 사태가 우리 경제와 환율에 미친 영향 등과 같이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사안에 균형 잡히고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가를 하고 가장 필요한 시점에 객관적 정책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 총재는 지난 17일 기준금리 동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직전인 5월 말 금리를 내릴 경우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한은은 정치를 고려하지 않고 경제 데이터만 보고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폴 터커(전 영란은행 부총재)가 얘기하듯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에 정치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 있고 그런 면에서 중앙은행으로서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임무를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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