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에서 아스팔트 보수까지…김문수 대선 후보의 반세기 정치 궤적

기념촬영하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경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기념촬영하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경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3일 선출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74)은 한국 현대 정치에서 가장 극적인 궤적을 그린 인물 중 하나다. 1970~1980년대에는 '노동운동 1세대'로 불리던 진보 진영의 상징이었지만, 2025년 현재 그는 '아스팔트 보수'의 대표 주자로서 보수 진영 대선 후보가 됐다.

김 후보는 경북 영천의 가난한 판자촌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했지만, 1971년 전국학생시위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되면서 정규 졸업은 1994년에야 이뤄졌다. 

이후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하며 현장 노동자로서 사회에 첫발을 디뎠고,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에는 '위장취업 노동운동'의 선구자였고, 두 차례의 구속과 서대문구치소 수감 등 탄압 속에서도 전국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그를 "내 아들"이라 불렀고,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전설이었다"고 회상할 만큼 당시 운동권에서 그의 존재감은 확고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소련 붕괴와 함께 그의 정치 성향도 전환점을 맞았다. 민중당 창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4년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총재의 권유로 보수정당에 입당했고, 이후 부천 소사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6년과 2010년에는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행정가로서도 입지를 다졌다. GTX 기획, 수도권 통합 요금제, 경기순환버스 등은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그러나 2012년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밀리고, 2016년 총선에서는 대구 수성갑에서 김부겸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패하면서 정치적 입지는 급격히 축소됐다. 이후 2018년 서울시장 선거까지 내리 패배하면서 약 10년간 '야인'의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부터 김 후보는 강경 보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태극기 집회' 참석, 유튜브 방송을 통한 진보 진영 비난, 전광훈 목사와의 기독자유통일당 창당 등 이념적 색채를 선명히 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총살감"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그는 다시 공직에 복귀했다. 경사노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을 거치며 존재감을 키웠고, 지난해 '12·3 비상계엄' 논란 당시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사과를 거부하며 보수 진영에서 '소신의 아이콘'으로 부각됐다.

결국 올해 대선 경선에서 김문수 후보는 56.53%의 득표율로 한동훈 전 장관을 꺾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일관된 태도와 강경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본선에서도 이러한 보수 색채가 유권자층 전반에 먹힐지는 미지수다. 여론조사상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범보수 빅텐트 논의도 아직은 기대만큼의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 후보의 반세기 정치 여정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선거 전략과 외연 확장 여부에 달려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제3회 보훈신춘문예 기사뷰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