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사는 응우옌딘훙 씨는 자녀에게 수년간 먹여온 분유가 위조품이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현지 공안당국이 600여 종의 분유 위조 제품을 제조·유통한 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훙 씨는 자신이 그동안 소매점에서 현금으로 구매한 제품에 대해 영수증 한 장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제품을) 믿고 샀지만, 어디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소비자의 분노를 넘어, 베트남 내에서 아직도 만연한 ‘비영수증 거래 관행’이 위조·불법 유통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베트남의 소매·서비스 총매출은 약 6400조 동(한화 약 400조 원)에 달했다. 이 와중에 정작 정품 제조업체들은 위조·불량 제품에 밀려 고사 위기를 겪고 있다.
올해 1~4월에만 해관(세관) 당국은 5206건의 불법 유통 사건을 적발했고, 단속된 불법 상품의 가치는 10조 동을 초과했다. 이는 소비시장 전반에 퍼진 유통 체계 문제와 소비자 보호 부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특히 의류 시장은 중국산 초저가 제품 유입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응우옌쑤언즈엉 베트남 섬유·의류협회 부회장은 “1만5000동~5만동(약 795원~2650원)짜리 셔츠가 도매시장을 점령하면서, (베트남) 국내 기업은 생산비조차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최근 강도 높은 정책 대응에 나섰다. 6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전자세금계산서 확대 시행령(2025-70호)’에 따르면, 연간 매출 10억 동 이상인 개인사업자 및 소규모 자영업자도 의무적으로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조세 징수 강화를 넘어, '정품 유통·정직한 기업 보호·소비자 권익 확보'라는 3중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시도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옹토(Ong Tho)’ 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즈엉타인타오 부사장은 “판매·구매 모든 단계에 대해 전자계산서를 요구하고, 유통 전 과정이 투명해진다면 진정한 공정 경쟁이 가능해진다”며 정부 방침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만 걸림돌은 여전히 존재한다. 소비자 인식 개선이 더디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이나 길거리 상점에서 "영수증을 달라"는 요청 자체가 생소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일부 상인은 “세금 안 내는 물건에 무슨 영수증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 유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즈엉 부사장은 “영수증 요구를 촉진하려면, 영수증 제출 시 포인트 적립, 상품 할인, 세금 환급 등 보상 체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세청은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기반의 개인사업자 과세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탈세 및 위조 방지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같은 정책은 한국 등 해외 투자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다수의 한국 기업들은 유통망 투명성과 위조품 대응 체계 부재에 애로를 겪어왔다. 전자세금계산서 제도가 본격화되면, 국내외 정품 브랜드의 신뢰도 회복과 유통관리 효율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부드러운 무기’라 부른다. 실물 단속이 아닌 디지털 세정을 통해 시장의 질서를 회복하고, 장기적으로는 투자자 신뢰 제고와 세수 기반 확대까지 꾀하는 전략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법제 정비와 단속 강화를 병행하지 않으면 제도의 실효성이 제한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결국 이 제도는 정부의 의지와 함께, 소비자 인식 전환이라는 ‘행동의 변화’가 뒤따를 때만 진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 베트남은 '가짜'와의 전면전에 기술이라는 ‘비무장 전술’을 투입했다. 이 무기가 날카로운 창이 될지, 무딘 흉기가 될지는 ‘영수증을 요구하는 손’이 얼마나 늘어날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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