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도·실용 경제'는 기업을 대하는 정책에서 시작

  • 대기업 홀대로는 추락하는 국가 경쟁력 복원 불가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지난 5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페 센터(공공정책 대학원)가 발표한 5대 핵심 신흥기술 지수 국가별 순위를 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종합 순위를 보면 한국은 미국(84.3)·중국(65.6)·유럽(41.0)·일본(23.8)에 이어 5위(20.0)에 랭크되었다. 순위보다 눈에 크게 띄는 것은 미국·중국과의 격차이다. 문제는 이 차이가 줄어들기보다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는 점과 미·중 양강 구도가 고착화하고 있는 점이다. 한국이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는 반도체 부문도 미국·중국·일본·대만에 이어 고작 5위에 자리한다. 심지어 AI와 바이오는 인도나 유럽 국가에도 밀려 고작 9~10위에 밀려나 있다.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고 자위해 보고 싶지만 최근 발표된 유사 보고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 현상이다.
 
물론 제조 기술 역량이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놓고 보면 이와 차이가 있다. 케네디스쿨 보고서는 단지 핵심 기술 역량에 기반하여 평가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반도체 외에 우리가 우월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도 중국과의 격차가 대폭 줄어들고 있다. 특히 LCD 시장 독식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이제 OLED 시장에서 한국의 수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다. 작년 OLED 세계 시장 점유율을 보면 한국산이 67%를 1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중국산이 33%로 추격하고 있다. 한국은 6.4% 감소하고, 중국은 7.6%나 증가했다. 디스플레이 부문의 격차 축소는 가전이나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점유율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위상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도 지각 변동도 예사롭지 않다. 현재의 시장 상황을 한마디로 약하면 일·독·한 등 전통 강호들의 부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반면에 중국의 약진이 놀라울 정도다. 세계 10위 완성차 메이커에 전기차를 앞세운 BYD가 7위에 등극하고, 지리자동차가 처음으로 10위권에 안착했다. 트럼프 관세 후폭풍으로 서방 메이커들은 불가피하게 생산 축소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에 시장이 없는 중국 업체들은 탄탄한 내수 시장의 기반 위에 해외 시장에서 강하게 걸고 있는 승부수가 먹혀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관세가 오히려 중국 완성차 업계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고 있어 올해에도 중국 메이커의 시장 점유율 확대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제조 강국으로 분류되던 독일이나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중국 ‘레드 테크(Red Tech)’의 공습으로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양상이다. 반도체나 자동차, 그리고 디스플레이에 이어 8대 주력산업에서 한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지속해서 하락 중이다. 감소하는 점유율을 고스란히 중국산이 삼키고 있는 꼴이다. 실제로 수출 실적에서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5월 수출을 보면 대미·대중 수출이 같이 8% 이상 급감하는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1.3% 감소했다. 수출의 부진은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중국의 과잉 생산에 따른 밀어내기식 저가 물량 수출에다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에 한국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는 모양새다.
 
‘기업주도성장’이 올바른 경제 처방
 
이런 엄중한 시기에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현재로서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으로 덤덤하게 관망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처하고 있는 대내외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면 절체절명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좌파 정권의 속성상 성장보다는 분배에 맞춘 포퓰리즘 정치에 기울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경제 살리기의 중심에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중도·실용의 경제 노선을 견지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진영 내의 세력은 아직도 구태에 머물러 있어 경제의 발본적인 혁신보다 눈앞의 인기나 과실을 챙기려는 유혹을 부정하기 어렵다. 기업보다는 노동자 혹은 소비자를 챙기려는 노란봉투법, 반도체 52시간 예외법, 상법, 양곡법 등의 처리에 관심이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향후 5년은 한국 경제의 부침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골든타임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기술 패권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리고 이 양강의 주도권 싸움에서 한국과 같은 나라는 변방으로 나가떨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 시진핑 3기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중국은 다시 민영경제 체제로 복귀를 서두르고 있다. 기업의 성장이 바로 국력이라는 확신을 한다. 사회주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국보다 훨씬 자본주의적이고 시장 경제적 접근을 한다. 규제의 철폐나 완화 차원에서도 우리보다 과감하고 획기적이다. 이재명 정부가 후보 때 내건 ‘국가주도성장’공약에 의문 부호가 남는다. 다른 후보가 내건 공약이지만 ‘기업주도성장’을 벤치마킹해야 하고, 국가는 이를 지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지난 정권에서는 야당이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국가의 성장 재기 모멘텀을 잡지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허송했다. 이에 따른 결과는 비참하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지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마 전 캐나다의 IVC 탱크가 발표한 ‘미래산업 경쟁력 지수’에서 한국 기업의 순위는 찾기가 힘들다. AI에서 LG가 16위, 로봇에서 로보티즈가 14위에 고작 이름을 올릴 정도로 초라하다. 기업 경시 풍조가 만들어낸 비참한 결과물이다. 경제 잠재성장률 예측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경제의 장래에 대해 보는 시선은 더 차다. 정부 출범에 따른 밀월도 잠시이고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국민은 등을 돌린다. 경제에 있어서 중도·실용의 가늠자는 기업을 대하는 정책에서 시작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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