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자동차 블라인드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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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파리의 심판'처럼 2025년 '닝샤의 심판'을 기대해 봅니다.”

지난 9일 중국 닝샤자치구 인촨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와인 경진대회 ‘2025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MB)’에서 만난 양민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포도주무역및 교육촉진중심 집행주임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파리의 심판은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사건이다. 이는 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며 프랑스 와인 중심의 세계 와인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올해로 벌써 4회째 CMB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양민 주임도 그만큼 중국 와인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기대감을 보인 셈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중국산 와인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중국 와인 포도밭 재배 면적은 스페인 다음으로 넓은 세계 2위, 소비시장은 세계 3위, 와인생산은 세계 5위다. ‘와인계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CMB가 올해 개최지로 닝샤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CMB에는 49개국에서 7165종 와인이 출품됐다. 이 중 중국산 와인만 672종으로 거의 10%를 차지한다. 중국산 와인은 CMB에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10년간 최고 등급인 그랑골드 47개를 포함해 모두 967개 메달을 받았다. 중국산 와인이 프랑스, 미국 등 다른 와인 강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단 이야기다.

CMB의 전문성과 공정성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CMB의 모든 와인 심사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된다. 나라, 산지, 품종 등을 알면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CMB 심사위원단은 세계 최고의 와인 전문가 집단이다. 올해는 55개국에서 400명이 심사위원으로 선발됐는데 교수, 와인 전문기자, 와인칼럼니스트, 와인 수입사, 와이너리 업자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한 와인마스터와 마스터 소믈리에까지 참여했다. 특히 같은 와인을 매일 2병씩 내놓기 때문에 점수 편차를 통해 심사위원 자질도 자동으로 평가된다.

사실 ‘파리의 심판’처럼 산업계를 완전히 뒤엎을 만한 획기적인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 있다. 올 초 세상을 놀라게 했던 ‘딥시크 모멘트’ 역시 미국이 인공지능(AI) 최강자라는 세상의 인식을 뒤엎고 중국의 ‘AI 굴기(우뚝 서다)’를 보여줬다.

중국산 '굴기'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가 세계 최초로 트리폴드 폰을 출시하고, 중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이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는가 하면, 중국산 브랜드의 피규어를 사기 위해 디즈니 종주국인 미국인조차 새벽부터 매장 앞에 줄 서서 기다린다.

중국산 굴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자동차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그리고 이제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가 화두로 떠오른 지금, 자동차 업계에선 얼마나 혁신적인지가 그동안 쌓아온 명성보다 더 중요해진 모습이다. 중국산 자동차 굴기에 도요타,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BMW,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가 무릎을 꿇을 정도다.

‘자동차 시장 테스트 베드’라 불리는 우리나라에도 최근 비야디 등 중국산 브랜드 공략이 거세다. 중국산 와인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듯, 자동차도 중국산이라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구매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브랜드를 따지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편견 없이 와인을 평가하는 CMB처럼, 자동차도 국가나 브랜드 같은 ‘계급장’ 떼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제품의 성능, 친환경성, 혁신성, 기술력, 내구성 등만 평가한다면 어떨까. 그 결과가 사뭇 궁금해진다.
 
중국 닝샤자치구 인촨에서 9일부터 사흘간 세계 최대 와인경진대회  사진신화통신 제공
중국 닝샤자치구 인촨에서 9일부터 사흘간 세계 최대 와인경진대회 ‘2025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MB)’이 열렸다. [사진=신화통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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