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지금 창업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본, 인재, 아이디어가 한 도시로 몰리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좌우된다.
서울은 지금 이 그 전장의 한복판에서 놀라운 선전을 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지수(Global Startup Ecosystem Index)'에서 서울은 세계 8위를 차지했다. 작년 9위에 이어 2년 연속 톱10에 들었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창업 강국 싱가포르와 일본 도쿄를 제쳤다. 자원 하나 없이도 1인당 GDP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싱가포르,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앞세운 도쿄를 제친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울도 놀라운 도시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정치적 갈등, 규제 리스크, 사회적 양극화 등 창업하기에 그리 친절한 나라가 아니다. 방탄국회나 열고 지도자가 거짓말이나 하고, 계엄이나 때리니, 청년들이 정치에서 희망을 보기 참 어려운 구조다. 그럼에도 서울은 '창업의 기적'을 자꾸 써 내려가고 있다. 그 비결은 명확하다. '실행력 있는 투자'와 '민첩한 생태계 구축'이다.
서울시는 2023년 '서울 비전2030 펀드'를 조성해 바이오, AI, 클린테크, 콘텐츠 등 미래 산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민간 투자와 결합해 2026년까지 5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서울을 글로벌 창업도시 반열에 올려놓은 핵심이다.
특히 세계 경제 불황으로 주요 도시들이 투자 회수(엑시트·Exit)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서울은 오히려 엑시트 규모가 늘어나며 활발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를 배워야 한다. 이곳은 창업 생태계의 새로운 교과서로 떠오른 곳이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농업 중심의 후진국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법인세를 파격적으로 낮추고(12.5%), 스타트업 친화적인 규제 환경을 조성하면서 글로벌 인재와 기업이 몰려들었다. 특히 아일랜드 더블린은 지금 유럽의 실리콘밸리라 불릴 정도다.
유럽 청년 창업자들은 아일랜드를 '도전할 수 있는 나라'라고 부른다. 핀테크, 게임, 헬스케어, 클린에너지 등 분야별 창업 성공사례도 뚜렷하다. 아일랜드는 스타트업에 정부를 동업자로 느끼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 법인 등록은 하루면 끝나고, 투자유치 시 기업과 정부가 공동 IR까지 나서는 모습은 한국의 창업가들에겐 부러운 장면이다.
서울도 이 점을 배워야 한다. 단지 자금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규제 개혁과 인재 유치, 글로벌 진출까지 밀착 동반자로 나서야 한다.
싱가포르의 기민함도 서울의 거울이 돼야 한다. 싱가포르는 창업 생태계만큼은 '작지만 강한 나라'의 전형이다. 정부는 '스마트네이션' 전략을 통해 데이터·AI·핀테크 중심의 창업 생태계를 정교하게 설계했다. 글로벌 VC가 신뢰하는 규제 투명성, 외국 인재 유치에 유리한 이민정책, 그리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구조는 창업가들에게는 천국에 가깝다.
서울은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무대 위에 서 있다. 자금조달력은 아시아 1위로 인정받았지만, '규제의 수도'라는 꼬리표를 아직 떼지 못했다. 창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행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서울시는 이미 대한상의·중기중앙회와 함께 규제개선 로드맵을 준비 중이며, 국회·정부와의 협력도 본격화하기로 했다. 다만, 새로 들어선 정부가 이 정책의 우선 순위를 뒤로 미루면 안 될 일이다.
창업은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이자,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는 사회적 계약이다. 서울은 이제 기회가 열리는 도시, 창업가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도시로 진화해야 한다. 그 꿈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결국 '행정의 철학'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언했다. 실행으로 답하겠다고···. 지금 이 말이, 서울을 유럽의 더블린, 아시아의 싱가포르와 같이 세계의 실리콘밸리로 이끌어줄 출발점이 돼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