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설계자로 나선 오세훈, 보수의 판을 다시 짠다"

  • 불출마 선언의 진의, 권력 아닌 질서를 설계하는 조용한 전략가

  • 보수 재건의 구심점으로…'플랫폼 리더십'을 택하다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지난 15일 저녁, 서울 한남동 서울시장 공관에서 의미심장한 회동이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김재섭 의원, 개혁신당의 이준석 의원, 그리고 권영진 의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표면적으로는 청년 정치인에 대한 '격려' 자리였지만, 실제로는 보수진영 재편의 서곡이 울린 자리였다.

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젊고 개혁적인 정치인들이 중심이 되어 보수를 바꿔 달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김용태 비대위원장을 향해 "개혁안을 끝까지 관철해달라"며 당내 반발에도 물러서지 말 것을 주문한 것은, 사실상 그를 공개적으로 '정치 후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오 시장이 단순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아닌, 보수진영 개혁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나서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오 시장 특유의 조심스러운 어조 뒤에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뚜렷하게 흐르고 있었다. 

특히 이준석 의원에 대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발언은 더욱 눈에 띈다. 당과의 오랜 갈등 끝에 당 밖에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협력을 열어두는 오 시장의 태도는 보수진영의 외연 확장을 위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보여준다. 이는 윤핵관 중심의 강경 노선과는 뚜렷하게 결을 달리하는 대목이다.

오 시장이 의도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보수가 민심을 되찾으려면, 새로워져야 한다. 그것도 완전히···. 보수가 더는 낡은 기득권의 이름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중도와 청년을 포섭할 수 있는 개혁세력으로 변신하지 못하면 다음 지방선거, 더 나아가 미래는 없다는 자각이 깔려 있다.

오 시장은 스스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단, 젊은 정치인들을 전면에 배치하며 측면 지원자로서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가 펼치는 개혁의 정치 뒤에 있는 정치적 설계자이자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오랜 행정 경험과 중도 확장 이미지, 그리고 고비 때마다 발휘되는 균형감각은 지금의 보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회동이 ‘포스트 윤석열 체제’를 염두에 둔 정치적 움직임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대선 참패 이후 리더십 공백을 메울 인물이 없는 가운데, 오 시장은 조용히 정치적 무게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번 회동은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으며, 보수 개혁과 차기 권력 재편 사이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오 시장은 이날의 메시지를 통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보수가 살아남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그리고 그는 그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더는 침묵하지 않기로 한 듯하다.

그의 행보를 곰곰히 더 따져보자. 토요일이었던 지난 4월 12일, 오 시장은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평일의 분주한 언론 환경을 피하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의 결정을 전한 그날, 정치권은 술렁였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야망이 꺾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오 시장의 불출마 선언은 권력 쟁취를 위한 전면 등장보다, 정치적 질서를 설계하고 판을 짜는 전략가로서의 자임에 가까웠다.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보수진영 전체의 체질 개선과 인재 육성에 집중하겠다는 결단의 표현인 셈이다.

이러한 선택은 지금의 보수진영이 직면한 혼란과 불신의 국면에서 매우 전략적인 접근으로 평가된다. 대선 출마는 곧 정면 대결과 편가르기를 의미하지만, 오 시장은 정반대로 '플랫폼'이 되기로 했다. 각기 다른 배경과 입장을 가진 개혁 성향 인물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내고, 자신은 그 뒤에서 조율하고 밀어주는 조력자의 위치를 택한 것이다. 이는 오 시장이 단순한 대선주자에서, 보수 정치의 '디자이너'로 탈바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곧 리더십의 새로운 정의이기도 하다. 더는 권력을 향한 목소리 큰 자가 리더가 아니라, 변화의 지형을 설계하고 인재를 키워내는 이가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침묵을 깨고 나선 오세훈은 이제 말이 아닌 '구조'를 바꾸는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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