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에는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 한정되었으나 그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상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상법이 개정되면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에서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상법 개정만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상법이 개정되더라도 현실의 적용에서는 결국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서 업무를 수행했는지 입증의 문제로 귀결되므로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기업가치 평가를 왜곡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예를 들어 대주주 지분비율이 높은 A회사와 소수주주 지분비율이 높은 B회사가 합병할 때 A회사의 가치가 높게 평가될수록, B회사의 가치가 낮게 평가될수록 대주주가 이익을 얻게 된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왜곡하여 인위적으로 낮추거나 높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가 전 해에 회사 실적이 좋지 않을 때 그 가치를 낮추고 싶으면 상속세및증여세법상의 방법을 적용하여 과거 손익을 토대로 평가하면 된다. 반대로 가치를 높이고 싶으면 현금흐름할인법 등 미래 수익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을 적용하고 긍정적으로 추정을 하면 된다. 이러한 기업가치 평가는 회계법인 등 전문가의 이름으로 이뤄지므로 그 평가의 부당함을 다투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주로 이용되는 방법인 현금흐름할인법으로 가치를 산정하면서 영구성장률을 2%로 높이는 방법으로 가치를 왜곡했다면 영구성장률 0%에 비해 그 평가금액의 차이는 크지만 2%는 위법하고 0%는 적법하다는 것을 사법절차에서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회사분할, 영업양도 등 다른 자본거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가치평가의 문제는 최근 나타난 것이 아니다. 가치평가를 주로 담당하는 회계업계에서도 기업 요구에 도장만 찍어주는 도장 장사꾼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그럼에도 현 제도하에서는 이를 밝히고 바로잡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왜곡된 가치로 거래를 한 경영진을 고발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은 회계법인의 가치평가에 따랐다는 이유로 혐의가 없다고 본다. 법원 역시 회계법인의 가치평가를 근거로 이사들의 손을 들어준다. 전문가의 판단을 따랐다면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판례 법리가 형성돼 있어 더 그렇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에 대한 감독·통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008년에도 부실 외부평가에 대한 제재 기준을 마련하고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관련 규정은 여전히 자본시장법 제165조의 4뿐이다. 게다가 이 규정은 상장법인에만 적용되는 것이어서 비상장법인에 대해선 아예 감독제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현재 기업가치 평가 일반에 관해서 적용될 수 있는 규정은 공인회계사법 제15조(공정 및 성실 의무)뿐이다. 회계사들의 양심에 기업가치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모두 맡긴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그래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상법 개정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 회피 수단 중 하나인 기업가치평가 왜곡이 어렵도록 감독제도를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회계감사 기준과 그 준칙처럼 기업가치에 대한 외부평가의 뚜렷한 기준을 마련하고, 그 평가 과정과 근거되는 자료를 평가조서 형태로 작성하여 일정 기간 보관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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