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을 목표로 설립된 첨단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둘러싼 민관의 자금 지원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 전기·전자, 정밀기기, 에너지, 금융 업계를 망라한 일본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출자 검토에 나서면서, 일본 정부가 ‘국가 프로젝트’로 규정한 반도체 국산화 전략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2일 혼다, 후지쓰, 캐논, 교세라, 후지필름홀딩스, 홋카이도전력 등 20여 개 기업이 라피더스에 대한 출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각 기업의 투자 규모는 5억~200억 엔(약 47억∼1897억원) 수준으로 전망되며,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출자 기업 수는 현재보다 크게 늘어 약 30곳에 이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라피더스는 이르면 연내 각 기업과 합의해 2026년 3월 이전 자금 유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산업의 재건을 목표로 2022년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등 일본 대표 대기업 8곳이 총 73억 엔(약 693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미국 IBM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회로 선폭 ‘2나노미터(㎚)’급 첨단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2나노’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앞선 공정 수준에 해당한다.
마이니치신문은 이같은 민간 출자 확대 움직임과 관련해 라피더스가 2025년도 중 민간 기업 출자로 약 1300억 엔(약 1조2300억원) 정도 자금 확보가 가능해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라피더스는 당초 2032년 4월까지 연구개발과 양산에 필요한 총 투자액은 7조 엔(약 6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봤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 지원 외에도 민간 출자를 2025년도에 약 1300억 엔까지 늘리고, 이후 1조 엔(약 9조원) 규모로 확대하는 것이 중장기 구상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참가 의사를 표명한 교세라는 이미 자본 참가 검토에 들어갔고, 캐논 역시 최종 조정 단계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캐논의 경우 수십억 엔 규모 투자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라피더스 설립 당시 출자에 참여했던 소니그룹과 소프트뱅크 등 기존 8개 주주 기업도 출자액을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민간 자금 확충이 현실화되면 라피더스는 2027년도 하반기로 계획된 양산화 단계에 필요한 자금 확보에 한층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출자 기업들과의 합의는 2025년도 중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권의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즈호은행 등 3대 메가은행은 2027년 4월 이후 일정 조건 충족 시 최대 2조 엔(약 19조원) 규모 융자를 제공할 의향을 라피더스 측에 전달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병행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라피더스에 지원을 약속한 금액은 약 2조9000억 엔(약 27조5000억원)에 달한다. 경제산업성은 라피더스 성공을 일본 산업 구조 전환의 핵심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국가 프로젝트’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경제산업성은 12일, 라피더스 공장에 인접한 홋카이도 지토세에 첨단 반도체 기술개발 거점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제산업성은 1000억 엔(약 9400억원)을 들여 2029년 가동을 목표로 이곳에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갖춘 공용 연구 거점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한 대당 가격이 수천억 원에 달해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구비하기 어려운 장비를 국가가 확보해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거점은 일본이 강점을 가진 제조 장비와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과 대학의 연계를 강화해 연구개발을 가속하는 역할을 맡게 되며, 2029년도 가동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닛케이는 출자 기업 수가 늘어날수록 라피더스의 주주 구조가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의사 결정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첨단 반도체 산업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고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수적인 만큼, 신속한 의사 결정과 명확한 경영 책임 체계가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관 자본이 동시에 유입되는 현재의 흐름은 일본이 반도체를 다시 한 번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피더스가 계획대로 2나노, 나아가 1.4나노 공정 양산에 성공해 이번 ‘국가 프로젝트’가 일본 산업 재건의 분수령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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