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연 교수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보다 예방에 더 중점둬야"

이연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24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업과 고용주를 처벌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방에 더 중점둬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이연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24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업과 고용주를 처벌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방에 더 중점둬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또 죽었다. 아침에 일터에 갔던 노동자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23일엔 대한전선 공장에선 근로자가 철제 구조물에 깔려 죽음을 맞이했다. 앞서 19일엔 SPC 제빵공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일하다가 또 숨졌다. 대전과 당진 등 전국에서 발생한 연이은 노동자의 죽음에 우리 사회는 공분 중이다. 

노동자가 계속 죽는 재난적 상황에서 이연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과 재난관리’라는 책을 냈다. 이연 교수는 24일 자신의 자택에서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재난피해를 줄이는 감재(减災) 정책이라기보다는 처벌에 더 무게를 둔 법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앞으로 노동자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기업과 사업주의 역할을 제안했다. 이연 교수가 말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무엇일까.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연이은 노동자 사망으로 중대재해처벌법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 2021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실제로 산업현장에서 중대 재해 발생 건수는 이전보다 많이 줄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1970년대부터 고도 경제 성장을 큰 부를 이뤘지만, 안전과 보건, 위생 분야는 아직 경제 성장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압사 사고가 대표적이다. 그의 사망에 분노한 민심이 더해져, 중대재해처벌법이 추진됐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포됐다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한발 나아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 내디뎌야 할 발걸음이 더 많다는 숙제를 남겼다.

2024년 1월부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기업에 전면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 하지만 법이 어렵게 마련됐음에도 현장에서 이에 대한 대비가 없어 상당한 어려움과 혼란을 겪었다. 여기에 ‘중대시민재해’는 다소 정의가 모호한 거 같다. 이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상주 작업 인원이 없는 산이나 강, 바다, 그밖에 학교나 공공장소 등에서 대형 재해가 발생하면 나중에 누굴 처벌해야 하는지 책임 추궁이 불명확하다. 

우리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영국의 ‘기업처벌법’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노동자 안전을 어떻게 관리하나?

- 맞다. 우리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영국의 기업처벌법을 많이 참고했다. 영국은 2000년에 건설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특히, 당시 토니 블레어 정권의 부총리였던 존 프레스코트의 선거구에서 연이어 노동자가 숨졌다. 존 프레스코트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아, 2001년 2월에 관련 단체들과 함께 CEO 회의를 주최했다. 이 회의엔 건설공사 도중 재해를 입은 사상자와 이재민, 가해자 등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한 모든 이들이 참여했다.

결국, 영국은 노동자의 안타까운 희생을 반면교사 삼아 현재 산업현장에서 발주자와 설계자, 시공자와 작업자 모두가 안전과 위생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 정부는 2007년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까지 도입해 기업주나 사업주의 과실을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법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지금까지 30여 건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우리는 영국의 기업처벌법을 인용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추진했다. 그런데 영국이 노동자 안전과 관련한 세세한 규정과 재난 대비 지침 등을 마련했던 점과 달리, 우리는 기업을 처벌하는데 너무 무게를 두고 법을 마련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 미리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앞으로 정부가 안전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올 1월에 펴낸 ‘중대재해처벌법과 재난관리’ 책에서 일본의 노동자 정책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일본 노동자 보호 방침은?

- 일본엔 기업처벌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게 없다. 대신 노동현장에 안전요원인 감시 감독관을 파견해 참사를 줄이는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 2015년부터 50인 이상 노동자 상주 기업에는 매년 종업원들의 ‘스트레스 체크 제도’를 법제화했다. 이는 노동자가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정도를 미리 확인해 대처하는 게 목표다. 만병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체크를 제도화해 노동자의 정신건강 관리뿐만 아니라, 직장 환경 개선과 작업장의 능률 향상 등을 추구한다. 실제로 제도 시행 후 노동자 직장 환경 개선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일본은 노동안전위생법(1972년 법률 제57호) 제61조 규정에 따라, 일본어 이해력을 배려해서 노동자 수준에 맞는 안전 교육을 하고 있다. 외국인 코스를 별도로 설치해 이들을 교육한다. 보조 교재도 사용하며, 통역자가 동시통역으로 노동자 안전을 위한 효율성을 높이는 데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이연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과 재난관리’라는 책을 펴내며 영국과 일본의 노동자 안전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뤘다 사진유대길 기자
이연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과 재난관리’라는 책을 펴내며, 영국과 일본의 노동자 안전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뤘다. [사진=유대길 기자]
우리의 중대재해처벌법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 산업현장 사고로 사망과 피해에 보상을 강화하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영국과 일본 사례를 보면 기업 처벌에만 치우쳐진 현행법을 앞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벌보다 어떻게 사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앞으로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전사고는 처벌만으로 근절되지 않는다. 기존과 다른, 노동과 안전 정책의 대전환과 함께 현장에서 안전수칙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평소에 기업과 사업장에서 얼마나 많이 노동자 안전교육을 하고 실제로 훈련했는지 이를 의무화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 노동자가 계속 현장에서 죽는 참사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은 사전에 위험을 파악하고 대비, 예방을 잘하는 게 최선이다. 이를 위해 다른 국가는 기업이나 사업주가 안전사고를 대비해 작업현장에 전문 안전요원을 상주시킨다. 지속해서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충분히 익힐 수 있도록 훈련을 지속해서 지원한다. 사용자에게 안전과 위생과 관련한 예산 편성과 집행, 전문 인력 파견과 감독 등을 주기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 고용주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우리 사회가 어렵게 마련한 안전수칙을 평소에 규정에 따라 준수했는지 등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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